역주조선왕조실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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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호도감(上號都監)

서지사항
항목명상호도감(上號都監)
용어구분전문주석
상위어도감(都監), 존호(尊號)
동의어존호도감(尊號都監)
관련어존숭도감(尊崇都監), 상호도감의궤(上號都監儀軌)
분야정치
유형집단 기구
자료문의한국학중앙연구원 한국학정보화실


[정의]
조선시대 왕실에서 존호를 올리는 의식을 주관하기 위하여 설치한 임시 관청.

[개설]
조선시대 존호를 올린 것을 기록한 의궤의 명칭이 『존호도감의궤』 또는 『존숭도감의궤』, 『상호도감의궤』로 되어 있으므로 상호도감 역시 존호를 올린 과정을 주관한 관청임을 알 수 있다. 『조선왕조실록』이나 의궤 기록에 의하면 정조 시대 이전까지 존호를 올리는 의식은 존숭도감에서 주관하였고 『존숭도감의궤』가 편찬되었다. 그러다가 1784년(정조 8) 이후 『조선왕조실록』에 상호도감의 명칭이 본격적으로 나온다. 이러한 흐름은 의궤의 제작에도 반영되었다. 상호도감의궤라는 명칭이 실록에 관청 명칭이 등장하기 이전인 1783년(정조 7) 3월에 제작된 『정순왕후장헌세자혜경궁상호도감의궤』에서 본격적으로 등장한다.

정조대 이전까지는 존호 올리는 의식을 주관한 관청을 존호도감 또는 존숭도감이라 불렀다. 정조대 이후에는 ‘상호도감’이라는 용어를 아울러 사용했다. 정조대에 상호도감이 본격적으로 구성되는 것은 사도세자의 추존 의식과 관련이 깊다. 정조는 대왕대비인 정순왕후와 어머니 혜경궁 홍씨에게도 존호를 올리지만, 존호를 올리는 더 큰 목적은 부친인 사도세자의 명예 회복에 있었다고 보인다.

[설립 경위 및 목적]
『조선왕조실록』에 의하면 『정조실록』부터 ‘상호도감’이라는 용어가 등장한다. 정조가 상호도감 도제조로 김상철을 임명하고 정일상 등 11명을 도감 제조로 삼았다는 기록이 그것이다[『정조실록』 8년 7월 7일]. 제조의 수가 많은 것은 정조가 도감 제조를 여러 차례 교체했기 때문이다. 1784년 9월 9일의 기록에는 “상호도감에서 영종대왕(英宗大王)과 정성왕후의 책보를 상전(尙傳)에게 전하고, 도감의 여러 신하들은 곧장 물러났다.”고 하였다. 9월 18일의 기록에는 “혜경궁에게 존호를 가상(加上)하고”라 하였다. 이로써 상호도감의 설치가 영조, 정성왕후, 혜경궁 홍씨에게 존호를 올리는 데 목적이 있었음을 알 수 있다.

『조선왕조실록』의 1784년 기록을 보면 『영조육존호장조재존호상호도감의궤』를 제작한 내용이 나온다. 이 의궤의 이름에서는 ‘존호’와 ‘상호’를 동시에 사용하고 있다. 1787년 1월의 『조선왕조실록』 기록에는 ‘상호도감’ 도제조 서명선에게 안구마를 지급했다는 내용이 나온다. 서명선이 정리한 의궤는 『영조정순후존호도감의궤』로 전해지고 있다. 즉, 이를 보아서도 상호도감과 존호도감은 서로 혼용되었음을 알 수 있다.

『정조실록』의 기록을 보면 1788년(정조 12), 1790년(정조 14), 1794년(정조 18)에 상호도감을 설치한 것으로 나타나 정조가 특히 왕실의 존호를 올리는 작업에 전념했음을 볼 수 있다. 이것은 1794년의 『조선왕조실록』 기록에 “경모궁에 추숭할 존호를 ‘융범희공개운창휴(隆範熙功開運彰休)’로 의논해 정했다.”라는 것에서도 보이듯 부친인 사도세자의 추숭에 가장 큰 목적이 있었다. 정조는 사도세자에게 8자의 존호를 올린 것에 대하여도 옛날에는 시호를 써서 두 글자로만 했지만, 효종 때부터 네 글자를 써서 존호를 올렸고 그 후에는 여덟 글자를 썼다고 하였다.

정조대에 본격적으로 추진한 왕실 어른의 존호 올리는 작업은 순조, 헌종, 철종, 고종대를 거치면서도 계속 이어졌다. 이러한 원인으로는 정순왕후, 순원왕후, 신정왕후 등이 장수하면서 대비들이 정치적 영향력을 행사한 점을 지적할 수 있다.

[조직 및 역할]
‘상호도감의궤’라는 명칭이 1783년(정조 7) 3월에 제작된 『정순왕후장헌세자혜경궁상호도감의궤』에서 본격적으로 등장한다. 정조는 같은 해 3월 17일 상호도감을 설치하고 이재협을 제조로 임명했으며, 그 밑에 도청·일방·이방·삼방·별공작을 두어 업무를 분장하게 했다. 일방은 옥보 제작을, 이방은 금보와 옥인 제작을, 삼방은 가마와 의장을 담당했다. 정순왕후에게는 혜휘(惠徽), 장헌세자에게는 수덕돈경(宣德敦慶), 혜경궁에게는 자희(慈禧)라는 존호를 올렸다. 1784년에는 영조 즉위 60주년을 기념하여 영조와 정성왕후에게 존호를 올리고 나아가 정순왕후와 장헌세자, 혜경궁에게도 존호를 올렸다. 그 과정을 정리하여 『영조육존호장조재존호상호도감의궤』를 제작하였다.

이 외에 1772년(영조 48)이나 1783년에 작성된 의궤의 경우, 안에는 ‘가상존호도감의궤’로 표기하면서 표제에는 ‘상호도감의궤’로 정리한 경우가 있다. 이를 통하여 ‘가상존호’와 ‘상호’를 혼용하였다고 짐작할 수 있다.

[참고문헌]
■ 『영조육존호장조재존호도감의궤(英祖六尊號莊祖再尊號都監儀軌)』
■ 『문조상호도감의궤(文祖上號都監儀軌)』
■ 『순조재존문조초존상호도감의궤(純祖再尊文祖初尊上號都監儀軌)』
■ 『장헌세자추상존호혜빈추상존호도감의궤(莊獻世子追上尊號惠嬪追上尊號都監儀軌)』
■ 서울대학교 규장각 편, 『규장각 소장 분류별 의궤 해설집』, 서울대학교 규장각, 2005.
■ 서울대학교 규장각 편, 『규장각 소장 의궤 종합목록』, 서울대학교 규장각, 2002.
■ 한국정신문화연구원 국학진흥연구사업추진위원회 편, 『장서각 소장 의궤 해제』, 한국정신문화연구원, 2002.
■ 한영우, 『조선왕조의 의궤: 국가의례와 그 기록』, 일지사, 2005.

■ [집필자] 신병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