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왕조실록사전을 편찬하고 인터넷으로 서비스하여 국내외 다양한 분야의 연구자와 일반 독자들이 왕조실록에 쉽게 접근할 수 있도록 하고자 합니다. 이를 통해 학술 문화 환경 변화에 부응하고 인문정보의 대중화를 선도하여 문화 산업 분야에서 실록의 활용을 극대화하기 위한 기반을 조성하고자 합니다.
[내용]
사방 1척의 푸른 비단 바탕에 붉은색으로 ‘영(令)’ 자를 썼다. 깃대의 길이는 4척으로 깃대의 끝에는 창의 날을 달았다. 창날 아래에 작고 납작한 주석 방울을 끼고 비녀장을 질러 놓아 기를 흔들면 소리가 났기 때문에 ‘쩔렁기’라고도 하였다. 군사들을 임명하여 명령을 전달할 때에는 반드시 영기나 영전(令箭), 영표(令票) 중 한 가지를 가지고 명령을 전달받거나 영내에 출입하도록 허락하였다. 이는 적군의 첩자가 영내에 들어오는 것을 막기 위해서 사용한 것이다. 행영(行營)이나 적군과 대진하고 있을 경우에는 영기와 영전만을 사용하였다. 임진왜란 이전에는 조선에 영기를 사용하는 규식이 없었으나 명나라의 절강병법(浙江兵法)이 도입되면서 그 사용법이 널리 보급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