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왕조실록사전을 편찬하고 인터넷으로 서비스하여 국내외 다양한 분야의 연구자와 일반 독자들이 왕조실록에 쉽게 접근할 수 있도록 하고자 합니다. 이를 통해 학술 문화 환경 변화에 부응하고 인문정보의 대중화를 선도하여 문화 산업 분야에서 실록의 활용을 극대화하기 위한 기반을 조성하고자 합니다.
[내용]
충아(衝牙)는 원유관(遠遊冠)의 부속품인 패옥의 하나이다. 원유관은 전형적인 중국 관모로서 진(秦)·한(漢)대부터 조복용으로 사용되었으나, 우리나라에서 왕이 원유관을 강사포(絳紗袍)와 함께 조복(朝服)으로 사용하기 시작한 것은 고려 공민왕 때 명의 사여를 통해서부터이다. 1437년(세종 19)에 조선에서 명나라에 보낸 성절사의 표문에 고려 공민왕 때 하사받은 면복과 원유관포를 언급하였는데, 충아는 이의 부속품인 패옥에 등장한다. “원유관에는 패옥 하나가 있고, 폐슬(蔽膝) 앞의 충아는 푸른 옥을 썼으며, 형우(珩瑀)와 거황(琚璜)은 흰 옥을 쓰고”라고 되어 있어 충아가 패옥에 다는 푸른 옥임을 알 수 있다[『세종실록』 19년 8월 28일].
패옥은 여러 가지 모양의 옥을 촘촘하게 연결하여 만들었다. 『국조오례의(國朝五禮儀)』 「서례」 제복도설에는, 왕의 패옥은 위에 형(珩)이 있고 가운데에는 거와 우(瑀)가 있으며 아래에는 쌍황(雙璜)이 있고 쌍황 사이에는 충아가 있으며 충아와 쌍황 사이에 쌍적(雙適)이 있는데 모두 무늬가 없는 민옥(珉玉)을 사용하였다고 되어 있다. 맨 윗부분에 금속 고리가 부착되어 있어 혁대에 걸어서 늘어뜨리게 되어 있었다. 걸을 때마다 황, 충아, 적 등 여러 가지 모양으로 깎아 만든 옥 조각이 서로 부딪쳐서 독특한 소리를 만들어냈다.
조선말기 고종황제 십이장복의 패옥은 2개의 옥패(玉佩)에 각각 옥형(玉珩) 1개, 우 1개, 거 2개, 충아 1개, 황 2개이며 우 밑에는 옥화(玉花)가 있고 옥화 밑에는 오적이 2개 달려 있어 모두 운룡문(雲龍紋)을 새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