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주조선왕조실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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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호지(大好紙)

서지사항
항목명대호지(大好紙)
용어구분전문주석
상위어종이
관련어대소호지전계(大小好紙廛契), 세공(歲貢), 세폐(歲幣), 소호지(小好紙), 시지(試紙)
분야교육 출판
유형물품 도구
자료문의한국학중앙연구원 한국학정보화실


[정의]
과거 시험지로 사용되었던 품질이 그리 좋지 않고 폭이 넓고 긴 종이.

[개설]
대호지(大好紙)는 세공(歲貢)·세폐(歲幣) 물품 중 하나였으며, 과거 시험지[試紙]로 사용된 대표적인 종이이다. 대호지는 소호지(小好紙)와 함께 1600년대부터 사용되기 시작하여 해마다 지방에서 중앙에 바치던 공물 중 하나였고, 중국으로 보내던 세폐 물품에도 포함되었다. 또한 정조조·순조조·고종조 등에는 과거 시험지로 사용되었던 대표적인 종이이다.

[형태]
대호지의 ‘대(大)’ 자와 소호지의 ‘소(小)’ 자는 종이의 크기를 의미할 수 있으나, 『탁지준절(度支準折)』에 의하면 그렇지 않다. 대호지의 경우 길이 2자 4치, 너비 1자 7치인 반면 소호지는 길이 2자 2치 2푼, 너비 1자 6치 5푼이다. 대호지와 소호지의 크기 비율이 10:9로 크게 차이가 나지 않았던 것이다. 그러나 무게와 가격에서는 크게 차이를 보인다. 대호지의 무게가 3근 14냥인 반면 소호지는 2근 4냥으로 대호지가 소호지 보다 약 1.7배 정도 무겁다.

가격은 대호지가 2전, 소호지는 1전 1푼 1리로 대호지가 무려 2배 가까이 비싼 종이였다. 즉 소호지가 대호지에 비해 크기는 비슷한 반면 무게와 가격 측면에서는 큰 차이를 보였다. 대호지는 소호지에 비해 종이의 밀도가 높고 도련이 잘된 종이였다. 이것은 대호지의 명칭에 포함된 ‘대’ 자가 종이의 크기를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 종이의 밀도와 품질을 의미하는 것이다.

[생활·민속 관련 사항]
1700년(숙종 26)에 과거 시험지로 지나치게 두텁고 좋은 종이를 사용하는 폐단이 생기자 글의 내용이 훌륭하더라도 품질이 좋은 종이를 사용한 자는 통과하지 못하도록 하였고, 각도에 시험지 견본을 보내어 견본 형태의 시지(試紙)를 제조하도록 명하였다.

1702년(숙종 28)에는 지나치게 좋은 시지를 쓴 이들을 3년 동안 과거 시험에 응하지 못하도록 하는 등 당시에는 규정화된 종이가 필요한 시기였다[『숙종실록』 28년 4월 3일]. 따라서 이후 정조·순조·고종 등의 연간에는 과거 시험지를 대호지로 규정함으로써 다른 종이의 사용은 금지되었던 것이다. 대호지의 용도는 시지뿐만 아니라 서책의 표지[冊衣] 및 춘추관의 일기 용지에도 사용되었다.

[참고문헌]
■ 『일성록(日省錄)』
■ 『탁지준절(度支準折)』

■ [집필자] 손계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