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왕조실록사전을 편찬하고 인터넷으로 서비스하여 국내외 다양한 분야의 연구자와 일반 독자들이 왕조실록에 쉽게 접근할 수 있도록 하고자 합니다. 이를 통해 학술 문화 환경 변화에 부응하고 인문정보의 대중화를 선도하여 문화 산업 분야에서 실록의 활용을 극대화하기 위한 기반을 조성하고자 합니다.
[개설]
백면지(白綿紙)는 예폐(禮幣)·세폐(歲幣) 물품에 포함되었고, 한때 과거시험지로 사용되었던 희고 견고한 종이이다. 『광재물보』에 백추지(白硾紙)는 “백면지이며 고려에서 난다.”고 기록한 것으로 보아 백추지와 백면지가 동일하거나 비슷한 품질의 종이임을 알 수 있다. 따라서 백면지는 백추지의 특징인 견고하고 질기며 지면이 매끄러운 하얀 종이이다.
황제의 생일인 성절(聖節)의 하례 방물(方物), 금나라에 보내는 예폐·세폐에 반드시 포함된 물품이며, 세자궁의 강독 후 상격(賞格)으로 내리는 지물(紙物) 중 하나였다. 『경세유표』에 의하면 시권(試券)의 종이로 백면지를 사용하고 서권(書卷)과 같이 말아둔다고 한 것으로 보아 한때 과거시험용 종이로 사용되었다.
백면지의 생산지는 전라도 등지와 충청도 충주목이었다. 『신증동국여지승람』에는 충주목 특산품 중의 하나로 백면지를 기록하였고, 『조선왕조실록』에는 백면지가 전라도 백성들의 요역으로 무겁다는 내용이 자주 등장하고 있다.
[형태]
명나라 송응성(宋應星)이 쓴『천공개물』에서 피지(皮紙)의 조지법을 설명하기를, 수피(樹皮)로 만드는 종이는 견고하며 세로로 찢으면 마치 면사처럼 끊어지고 가로로 찢으면 힘이 든다고 해서 백면지라고 한다 하였다. 즉 종이의 견고하고 질긴 정도를 알 수 있는 대목이다.
『탁지준절』에서 백면지의 크기와 가격을 대호지(大好紙)·소호지(小好紙)와 비교해 보면, 백면지는 길이 2자 2치 5푼, 너비 1자 7치로, 대호지(길이 2자 4치, 너비 1자 7치), 소호지(길이 2자 2치 2푼, 너비 1자 6치 5푼)와 유사한 크기이다. 가격은 5푼 5리로 대호지 2전, 소호지 1전 1푼 3리보다 저렴하다. 즉 종이의 크기에서는 대호지·소호지와 큰 차이가 없으나 가격에서는 대호지의 4분의 1, 소호지의 2분의 1 정도이므로 지품(紙品)에서 대호지·소호지보다 낮은 종이이다.
백면지가 대호지·소호지보다 품질이 떨어짐에도 불구하고 예폐·세폐 등에 사용할 수 있었던 것은 호조에서 백면지를 일반 백면지와 예단용 백면지로 구분하여 품질을 관리하였기 때문이다. 따라서 일반 백면지는 대호지·소호지 등보다 품질이 떨어지지만, 예단용 백면지는 별도의 기관에서 엄격하게 품질을 관리하였다. 이는 『탁지준절』에서 ‘백면지’ 항목과 ‘예단백면지(禮單白綿紙)’ 항목을 별도로 두고 있는 것으로 보아 이들을 별도의 개념으로 인식하였음을 알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