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주조선왕조실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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흉례(凶禮)

서지사항
항목명흉례(凶禮)
용어구분전문주석
상위어오례(五禮)
하위어국상(國喪), 사후토제(謝后土祭), 성복(成服), 성복례(成服禮), 하산릉전(下山陵奠)
관련어사종(四種), 상례(喪禮), 승하(昇遐)
분야왕실
유형개념용어
자료문의한국학중앙연구원 한국학정보화실


[정의]
오례(五禮)의 하나로 상(喪)·장(葬)에 관한 모든 의식 절차를 이르는 말.

[개설]
일반적으로 상례라 하면 민간의 상·장에 관한 의례를 의미하는 데 반해, 흉례는 민간의 상·장에 관한 의례뿐만 아니라 국가 또는 왕실의 의절을 포함하는 넓은 의미의 국가 규범적 예전(禮典)의 성격을 지닌다고 할 수 있다. 오례의 준칙을 담고 있는 『국조오례의(國朝五禮儀)』에는, 흉례와 관련되어 91개 조항이 있다. 91개 조항에는 위황제거애의(爲皇帝擧哀儀)와 같이 중국 조정에 대한 의례를 담고 있기도 하지만, 대부분 국장 또는 왕실 중심의 의식이다. 민간의 상례 의식인 대부사서인상의(大夫士庶人喪儀)가 포함되기도 하였다.

중요한 절차는 보통 초종(初終), 습(襲), 소렴(小殮), 대렴(大殮), 성복(成服), 조상(弔喪), 치장(治葬), 발인(發靷), 급묘(及墓), 우제(虞祭), 졸곡(卒哭), 부제(祔祭), 소상(小祥), 대상(大祥), 담제(禫祭)로 되어 있다.

왕의 경우는 고명(顧命), 초종, 복(復), 습, 위위곡(爲位哭), 거림(擧臨), 고사묘(告社廟), 소렴, 대렴, 성빈(成殯), 성복, 복제(服制), 사위(嗣位), 고부청시청승습(告訃請諡請承襲), 치장(治葬), 청시종묘(請諡宗廟), 계빈(啓殯), 조전(祖奠), 견전(遣奠), 발인, 노제(路祭), 천전(遷奠), 입주전(立主奠), 우제, 졸곡제, 혼전 제사, 산릉제(山陵祭), 사제(賜祭), 연제(練祭), 상제(祥祭), 담제, 부묘(祔廟) 등의 절차로 되어 있다.

[절차]
『국조오례의』를 통해 정리된 상장의 절차는 아래와 같다.

1) 초종 단계 (승하부터~목욕 전까지)

왕의 운명이 가까우면 정침(正寢)에 모시고, 왕은 세자 및 신임하는 신하에게 뒷일을 부탁하는 말을 남기는 고명 의식이 있다.

초종은 돌아가신 것을 확인하는 의식으로 속광(屬纊)이라고 한다.

복은 죽음에 이르러 지붕에 올라가 상위복(上位復)이라고 부르는데, 이 혼을 불러 시체의 넋과 합쳐지게 하려는 것이다. 이렇게 해서 살아나지 않으면 죽은 이의 절차로 처리하게 된다.

계령(戒令)은 총호사(總護使)를 임명하고 빈전도감(殯殿都監), 국장도감(國葬都監), 산릉도감(山陵都監)을 설치하여 각각 일을 맡게 하는 것이다.

2) 빈전에서 여러 제사

목욕은 시신을 정결하게 씻긴 다음 명의를 입히는 의식이다.

습은 옷을 갈아입히는 의식이다. 왕은 곤룡포를 입히는데 관례 때의 초가복(初加服)이 습할 때 복식이다.

위위곡은 왕세자 대군, 왕비, 세자빈 등이 자리를 마련하고 곡하는 것이고 거림은 종친 문무백관이 임곡(臨哭)하는 것이다.

함(含)은 시신의 입 속에 쌀과 진주를 물리는 의식이다.

설빙(設氷)은 시신이 상하지 않도록 얼음을 설치하는 것이다. 이어서 영좌(靈座)를 마련하는데, 먼저 평상을 설치하고 붉게 칠한 교의(交椅)를 평상 위에 남향(南向)으로 설치한다.

함(函)에 유의(遺衣)를 개켜서 담고, 혼이 머무는 신백(神帛)을 만들어 유의 위에 놓고, 함을 교의에 모셔 놓는다.

그러고 나서 영좌의 오른쪽에는 명정(銘旌)을 세운다.

고사묘(告社廟)는 왕의 승하를 사직과 종묘에 알리는 의식이다.

그리고 소렴한 후 대렴을 하는데, 대렴 후에는 재궁에 시신을 안치한다.

그날 성빈을 하는데, 찬궁을 만들고 그 안에 재궁을 안치하여 빈소를 이루는 것이다.

성빈 후에는 임시 거처인 여차(廬次)로 옮기고 발인 전까지 5개월 간 거처하게 된다.

대렴 후 왕실에서는 제6일에 상복을 입는 의식인 성복이 있다.

성복은 원칙적으로 오복제(五服制)에 따라 참최(斬衰)·자최(齊衰)·대공(大功)·소공(小功)·시마(緦麻)가 있다.

성복 후 왕세자가 왕위를 잇는 사위 의식과 즉위교서를 반포하는 반교가 있다. 그리고 중국에 왕의 승하를 알리고 시호를 청하고 왕위를 잇게 해주기를 청하는 고부청시청승습의(告訃請諡請承襲儀)가 있다.

그리고 조석곡전급상식(朝夕哭奠及上食)은 아침저녁으로 곡하고 제사를 올리고 식시(食時)에는 음식을 올린다. 삭망전은 초하루 보름에 올리는 제사로 아침에 곡과 전을 할 때 음식 가지 수를 늘려 진설한다,

의정부솔백관진향의(議政府率百官進香儀)는 의정부가 백관을 인솔하고 올리는 제사다.

3) 치장, 발인 단계

천자는 7개월에, 왕은 5개월에, 사대부는 3개월에 장사한다. 치장은 장사지낼 땅을 정하고 묘역을 만드는 것이다. 재궁에 여러 번 옻칠을 하고, 재궁에 상(上)자를 쓰고, 재궁을 묶고 싼다. 종묘에 가서 대행왕(大行王)에게 시호(諡號)를 올리는 것을 허락해 주기를 조종(祖宗)에게 청하고, 빈전에 시책과 시보를 올린다.

계빈은 빈전을 열 때에 올리는 제사이다. 이어서 찬궁을 치우고 재궁을 털고 닦고서 관의(官衣)를 덮어 두는 의식이다.

조조의(朝祖儀)는 발인하기 전에 마지막으로 종묘의 조상신을 뵈는 의식이다. 이는 그 망인이 생전에 먼 곳으로 출타하려면 반드시 사당에 와 고하던 의식을 그대로 취한 것이다. 발인하기 하루 전에 혼백상자(魂帛箱子)로 태묘(太廟)에 조조의 예를 거행하고 곧 도로 빈전에 다시 봉안(奉安)했다가 그 이튿날 새벽에 발인하게 된다.

발인하기 전 길의 신인 도신(道神)에게 올리는 제사로 조전을 한다.

발인 전에 지내는 제사로 견전을 하는데, 제사에 앞서 대여 등을 배치해 두고 제사를 지내며 애책문을 읽는다.

발인의 반차(班次)는 장지로 향해 가는 행렬의 배치이며 발인은 장지로 가는 의식이다.

장지로 가는 중간에 길에서 노제를 지낸다.

천전은 하관하기 전에 올리는 제사이며 이어서 재궁을 현궁에 묻는다. 입주전은 우주를 세우고 올리는 제사이다.

반우(返虞)는 산릉에서 우주를 모시고 궁궐에 있는 혼전에 모시는 의식이다.

4) 혼전 제사

산릉에서 아침저녁으로 곡하고 음식을 올린다. 음식을 올리는 것은 상제를 지내고 나면 그만둔다.

우제는 죽은 사람의 시체를 매장하였으므로 그의 혼이 방황할 것을 우려하여 위안하는 의식이다. 왕실에서는 칠우제, 사대부에서는 삼우제를 지낸다.

졸곡은 무시곡(無時哭)을 마친다는 뜻으로 이로부터 수시로 하던 곡을 멈추고 조석에만 곡을 한다.

혼전에서 아침저녁으로 곡하고 연제 후에는 그친다. 또 아침저녁 식사 때 음식을 올리는데 상제를 지내고 나면 그만한다. 사시와 납일에, 속절과 초하루 보름날 혼전에 제사를 지낸다. 사시와 속절 그리고 초하루 보름날 산릉에 제사를 지낸다.

초상으로부터 13개월이 되는 날 즉, 1주기에 연제를 지내고, 초상으로부터 25개월째 되는 날 즉, 2주기에 상제를 지낸다. 상제를 지낸 뒤 1개월을 사이에 두고 담제를 지낸다.

담제 후에 종묘에 신주를 모시는 부묘를 한다.

[변천]
위와 같은 『국조오례의』에 수록된 흉례 의식은 이후 1744년(영조 20)에 편찬된 『국조속오례의(國朝續五禮儀)』에서 몇 가지 규정이 변화되었다.

이밖에도 숙종의 특명으로 병풍석 사용이 금지되었고, 비각(碑閣)의 경우에도 처음에는 신도비를 세웠다가 문종 때 열성의 공덕이 국승(國乘), 즉 국사(國史)에 기재되어 있으므로 비석을 세울 필요가 없다 하여 이를 폐지시켰다. 이후 표석(表石)을 세우기도 하고, 세우지 아니하기도 한다. 『국조상례보편(國朝喪禮補編)』에서는 세우는 것으로 되어 있다.

이러한 상례는 성리학의 이해와 관련하여 변한다. 태조대는 불교와 혼합된 백일재, 사십구재 등이 행해지고, 태종대는 1달을 1일로 바꾸어 27개월을 27일로 바꾸어 삼년상을 마치는 역월제(易月制)를 시행하였다. 세종대에 우제, 졸곡제가 이해되어 졸곡이 중심이 되는 상례로 바뀌었으며, 졸곡을 전후로 흑립(黑笠), 백립(白笠) 논의가 나와 선조대에는 백립제로 확립된다.

조선후기에는 소상인 연제, 대상인 상제에 상복을 바꾸는 것이 논의되고, 우리나라 풍습으로 성리학 이념과 연관되어 여묘살이 3년이 강화된다.

그리고 복제에서 부재위모기제(父在爲母朞制)나 장자 3년상이 강화되는 것도 조선전기와 조선후기가 다른 점이다. 그리고 삼부(三父), 팔모(八母)에 대한 복제가 확립되어 간다. 삼부, 팔모란 친부모 이외의 사람을 말하는데, 삼부는 한 집에서 함께 사는 계부나 함께 살지 않는 계부, 친모가 후살이 간 집에 따라가서 섬기는 계부를 말한다. 팔모는 적모(嫡母)·계모·양모·자모(慈母)·서모(庶母)·유모 등을 지칭한다. 여기서 적모란 서자가 아버지의 본처를, 자모란 서자가 어머니를 여윈 후 자기를 길러 준 다른 첩을, 서모란 아버지의 첩을 지칭한다. 그리고 외조모, 외조부에 대한 복제도 중국과 달리 강화되어 있는 것이 특색이다.

정통을 이어가는 종손이 삼년상을 주도하면서 친소(親疎)에 따라 복제의 등급이 정해지기 때문에, 상례는 자연히 성리학 이념에 따라 행해지게 된다. 그리고 성리학 이념의 핵심인 종법을 상례의 복제로서 실현하게 된다.

[의의]
상례는 죽은 사람을 어떻게 보내는가를 규정하는 예이다. 이 중에서 가장 중요한 예가 부모에 대한 상례이다. 부모를 잃은 슬픔을 자연스럽게 다 표현하도록 규정한 것이 상복(喪服)이고 상례 절차이다. 부모는 자식을 낳아 만 2년을 스스로 걷고 먹고 생활할 수 있게 될 때까지 품안에 품고 길러준다. 이렇게 3년을 품안에서 길러 준 것처럼 부모님이 돌아가시면 육신은 땅에 묻고 영혼은 신주에 옮겨 모시게 된다. 신주에 모셔진 영혼은 새로 태어난 것처럼 편안해지는 기간이 만 2년인 것이다. 그래서 부모가 만 2년 품안에서 길러준 것처럼 부모에 대해 3년상을 하는 것이 도리인 것이다.

이러한 상례는 슬픔을 근본으로 하기 때문에 슬픔의 정도에 따라 의례가 달라지고 상복이 바뀌게 된다. 장사를 지내기 전에는 슬픔이 가득하기 때문에 최복(衰服)을 입고 지팡이를 짚고 수시로 곡을 하게 된다. 장사를 지내고 영혼을 신주에 모시고 편안하게 하시라고 하는 우제를 지내고 나면 자연히 슬픔이 줄어들어 곡을 그치는 졸곡제를 지내게 된다. 졸곡제, 연제, 상제, 담제를 지내면서 슬픔이 가신 것만큼 상복을 바꾸어 입는다.

이렇게 조선시대 상례는 사람의 도리에도 맞고, 그러면서도 사람의 감정을 순리에 따라 자연히 발할 수 있도록 합리적으로 만들어진 의례이다. 과불급 즉 지나치거나 모자람이 없게 적절하게 짜여진 의례인 것이다.

[참고문헌]
■ 『국조오례의(國朝五禮儀)』
■ 『국조상례보편(國朝喪禮補編)』
■ 『춘관통고(春官通考)』
■ 『대전회통(大典會通)』
■ 『문헌비고(文獻備考)』
■ 『주례(周禮)』
■ 『한국역사용어시소러스』, 국사편찬위원회, http://thesaurus.history.go.kr/.

■ [집필자] 지두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