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왕조실록사전을 편찬하고 인터넷으로 서비스하여 국내외 다양한 분야의 연구자와 일반 독자들이 왕조실록에 쉽게 접근할 수 있도록 하고자 합니다. 이를 통해 학술 문화 환경 변화에 부응하고 인문정보의 대중화를 선도하여 문화 산업 분야에서 실록의 활용을 극대화하기 위한 기반을 조성하고자 합니다.
[개설]
환도(環刀)는 조선시대에 군인 등이 차고 다녔던 도검류(刀劍類)의 무기이다. 군사용뿐만 아니라 의장용(儀仗用)으로도 제작, 사용되었다. 왕실이나 중앙 조정에서 사용된 환도는 군기감(軍器監)에 소속된 환도장(環刀匠)들이 만들었으며, 병사들의 무기로 쓰이는 환도는 각 지방에서 공납(貢納)으로 제작하였다. 시대에 따라 환도의 크기와 모양도 바뀌었는데, 대체로 패용(佩用)하기 편리하게 제작되었기 때문에 길이가 왜도(倭刀)보다는 10~20㎝ 정도 짧다.
[연원 및 변천]
조선시대에는 긴 외날을 가진 단병기는 대부분 환도라고 하였다. 우리나라의 기록에서 환도라는 명칭이 처음 등장한 것은 고려가 원나라와 본격적으로 접촉하기 시작한 충렬왕 때이다. 『고려사(高麗史)』에는 1277년(고려 충렬왕 3) 4월에 원나라 사신 유홍홀노(劉弘忽奴)가 오자 왕이 이장무(李藏茂)를 충주에 보내서 환도 1천 자루를 만들게 했다는 기록이 있으며, 그 후에도 수차례 원나라에 환도를 만들어 바친 기록이 있다.
환도의 환(環) 자의 의미에 대해서는 손목 보호용 칼방패[코등이]의 둥근 형태를 의미한다는 주장과, 칼집을 허리에 매는 둥근 고리를 의미한다는 『융원필비(戎垣必備)』의 주장 등이 있다. 그러나 기병인 몽골족이 주로 사용하는 외날검인 사브르가 갖는 공통적인 특징은 손목 보호용 칼방패의 형태가 아니라 칼을 매는 둥근 고리와 끈에 있다. 그렇기 때문에 『융원필비』의 주장이 보다 타당하다고 볼 수 있다.
조선초기에는 환도의 규격이 통일되지 않아서 그 길이가 제각각이었으므로, 문종은 신하들로 하여금 환도의 규격을 논의하도록 하였다[『문종실록』 1년 2월 25일]. 문종 당시 정해진 환도의 규격을 주척으로 환산하면, 기병용 환도의 날 길이는 겨우 30㎝에 불과하다.
그러나 이미 임진왜란 이전부터 조선 조정에서는 환도의 길이가 너무 짧다는 논의가 있었고, 임진왜란을 겪는 과정에서도 일본도에 대항하기에는 조선 환도가 너무 짧다는 점이 확인되었다. 이로 인해 조선후기의 환도 길이는 상대적으로 길어졌다. 조선말기에 이르러서는 환도의 무기로서의 의미는 점차 사라지고 의장품화되었다. 그러면서 길이가 50㎝ 정도밖에 되지 않는 짧은 환도나 동아대학교 박물관 소장 소환도처럼 칼날을 아예 대나무로 만든 것들이 제작되었다.
[형태]
조선전기의 환도는 『세종실록』과 『국조오례의(國朝五禮儀)』에 그 모습이 자세히 그려져 있다. 『세종실록』의 그림을 보면, 당시의 환도는 칼날이 큰 폭으로 휘었으며 길이는 상당히 짧은 편이다. 칼머리에는 두석 장식을 둘렀고, 칼자루에는 구멍을 뚫어 붉은 술인 홍조수아(紅絛穗兒)를 드리웠다. 칼집은 물고기 가죽으로 감싸고 검은색이나 주홍색으로 칠하였다. 칼집에 달린 2개의 칼집 고리에는 끈을 꿰어 허리에 묶었다. 그림에는 나타나 있지 않지만, 환도에는 패용을 위한 별도의 가죽 띠가 있었으며, 소재로는 소가죽이나 사슴가죽을 사용하였다[『세종실록』 오례, 군례 서례 병기 창·장검·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