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왕조실록사전을 편찬하고 인터넷으로 서비스하여 국내외 다양한 분야의 연구자와 일반 독자들이 왕조실록에 쉽게 접근할 수 있도록 하고자 합니다. 이를 통해 학술 문화 환경 변화에 부응하고 인문정보의 대중화를 선도하여 문화 산업 분야에서 실록의 활용을 극대화하기 위한 기반을 조성하고자 합니다.
[내용]
명대 홍려시는 조회(朝會)·빈객(賓客)·길흉(吉凶)의 의례를 관장하였다. 국가의 큰 전례(典禮), 교묘(郊廟), 제사(祭祀), 조회, 연향(宴饗), 경연(經筵), 책봉(冊封), 진력(進歷), 진춘(進春), 전제(傳制), 주첩(奏捷) 등의 의례가 있으면 관련 업무를 담당하였다. 또한 외방 아전의 조근(朝覲), 여러 번방의 입공(入貢), 백관·사신의 복명(覆命), 사은(謝恩),사퇴하는 자가 있으면 홍려시에서 주문(奏文)으로 아뢰어 처리하였다. 청대도 명대의 전례를 따라 동일한 직무를 수행하였지만, 외교 측면에서 사신의 의례 연습에 관련되는 업무만 수행하였다.
홍려시는 황실 관련 각종 의례를 관장하고, 외방과 외국 사신의 왕래에 관련하여 황제의 인견 및 의례 참여를 주관하였기 때문에 조선의 대중국 외교 활동에 밀접한 관련성을 가졌다. 북경에서 조선 사신이 주로 접촉하는 대상은 예부 낭중과 주사, 홍려시 서반과 회동관 제독 등이었다. 특히 홍려시 관원은 의식 연습과 각종 소식의 전달 등으로 조선의 사신들과 빈번하게 접촉하였다. 홍려시 서반 최영(崔瑛)·이상(李相) 등은 중종의 권서국사칙서(權署國事勅書)를 받는 데 도움을 주어 외교 통로로서 역할을 하였다. 또한 홍려시의 관원이 조선에 사신으로 파견된 사례도 많다. 조선초기 임첨년(任添年)·한확(韓確) 등과 같이 공녀로 황비가 된 가족으로 명의 홍려시 관원에 임명된 사례도 있다. 조선에서는 빈객을 담당하는 홍려시를 조선의 예빈시(禮賓寺)와 동일하게 인식하여 대명 외교관청으로 중시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