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왕조실록사전을 편찬하고 인터넷으로 서비스하여 국내외 다양한 분야의 연구자와 일반 독자들이 왕조실록에 쉽게 접근할 수 있도록 하고자 합니다. 이를 통해 학술 문화 환경 변화에 부응하고 인문정보의 대중화를 선도하여 문화 산업 분야에서 실록의 활용을 극대화하기 위한 기반을 조성하고자 합니다.
[내용]
조선시대에 혐의 사실에 대하여 형벌을 부과하기 위하여는 피의자의 자백을 받도록 하고 있는데, 이는 조선에서 형법전으로 사용하였던 『대명률(大明律)』에 규정되어 있다. 자백을 유도하기 위하여 신문이 이루어지게 되는데, 이러한 신문은 보통 추문(推問)이라고 하고, 추문은 일반적으로 물어보는 평문(平問)과, 형(刑)을 가하여 물어보는 형문(刑問)으로 나뉜다. 여기서 형문(刑問)을 할 때 형(刑)을 가하는 행위를 보통 고신(拷訊)이라고 하는데, 이를 형신(刑訊) 또는 형추(刑推)라고도 한다. 즉 형추(刑推)는 피의자를 신문하기 위하여 형(刑)을 가하는 행위, 즉 고신(拷訊)인 것이다. 조선시대에는 형추(刑推)나 형신(刑訊)보다는 고신(拷訊)이라는 용어를 더 자주 사용하였다고 한다.
『속대전(續大典)』에서는 이러한 형추(刑推)를 과거 합격자가 중죄(重罪)를 범한 경우 우선 평문(平問)을 한 다음 불복할 때에 형추(刑推)를 가하도록 하고 있으며, 임신한 여자는 면제하고 있다. 형추(刑推)하는 방식에 대하여는 1차에 30대를 넘지못하도록 하고 있으며, 1차 집행 후 3일을 넘긴 후에 다시 집행하도록 하였다. 신장(訊杖)의 규격 및 재질에 대하여도 일정한 제한을 가하고 있다. 이러한 제한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군대에서 쓰는 곤장(棍杖)을 남용하는 사례가 있었기 때문에 조선시대에는 남형(濫刑)의 폐단을 막기 위하여 여러 차례 국왕의 전교가 내려졌으며, 남형에 대한 금지는 『경국대전』에도 규정되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