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왕조실록사전을 편찬하고 인터넷으로 서비스하여 국내외 다양한 분야의 연구자와 일반 독자들이 왕조실록에 쉽게 접근할 수 있도록 하고자 합니다. 이를 통해 학술 문화 환경 변화에 부응하고 인문정보의 대중화를 선도하여 문화 산업 분야에서 실록의 활용을 극대화하기 위한 기반을 조성하고자 합니다.
[개설]
향당(鄕黨)은 보통 지역 사회를 지칭할 때 쓰는 일반적인 용어로, 『전한서(前漢書)』 「식화지(食貨志)」에 "5가(家)가 린(鄰)이 되고, 5린이 리(里)가 되며, 4리가 족(族)이 되고, 5족이 당(黨)이 되며, 5당이 주(州)가 되고, 5주가 향(鄕)이 되는데, 1향은 1만 2천 500호이다.[五家爲鄰 五鄰爲里 四里爲族 五族爲黨 五黨爲州 五州爲鄕 是萬二千五百戸也]"라고 한 데에서 유래한다. 조선시대의 지방 제도는 각 도(道) 밑에 주(州)·부(府)·군(郡)·현(縣)이 있어 이곳에는 중앙관이 파견되었고, 수령이 파견되는 주부군현 밑에는 면리(面里)가 설치되었다. 따라서 보통 향당이라는 표현은 군현 단위의 지역 사회를 지칭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내용 및 특징]
향당에 대한 『조선왕조실록』 기사를 보면, 조선초기 검교판중추원사(檢校判中樞院事) 변옥란(卞玉蘭)의 졸기(卒記)에 그가 효도를 하고 우애를 하였다고 향당에서 칭송했다는 표현이 있다[『태조실록』 4년 1월 23일]. 또한 각 도에서 보고한 효자·절부(節婦) 등을 정려(旌閭)하고 복호(復戶)하는 보고서에서 전라도 광주 사람 탁신(卓愼)이 효도하여 향당에서 그를 칭송한다고 한 기록이 있다[『태조실록』 4년 9월 16일].
한편, 향당은 중앙 정부를 일컫는 조정(朝廷)과 대응하는 용어로 널리 사용되기도 하였다. 예를 들어, 총제(摠制) 유사눌(柳思訥)은 「용흥가(龍興歌)」를 지어 바치면서 "이를 관현에 올려서 악부에 간수하여 조정에서 연주하고 향당에서 사용하여, 온 나라 신민들로 하여금 영구한 세대에 잊지 않도록 하시면 매우 다행이겠습니다."라고 하였다[『세종실록』 13년 10월 1일].
향당은 중앙과 지방의 대칭으로 사용되기도 하였다. 조선후기에 영조는 중앙과 지방의 운영 원리가 다르다는 원칙을 제시하였다. 영조는 영남 유림들의 상소에 대한 비답(批答)에서 ‘조정은 조정이고 향당은 향당[朝廷自朝廷 鄕黨自鄕黨]’이라는 하교로 각 지역의 자율적 결정권을 강조하였다[『영조실록』 49년 1월 27일]. 여기에서 조정은 중앙 정부를 지칭하는 것이고 향당은 중앙관이 파견된 군현 단위의 지방을 말하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