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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설]
평성(平聲)은 성조(聲調) 언어였던 중세 국어에서 가장 낮은 소리에 해당한다. 『훈민정음(訓民正音)』에 따르면 ‘가 소리’이자 안정되고 부드러운[安而和] 음이었다. 글자의 왼쪽에 두 점, 한 점의 방점을 찍어 각각 상성(上聲)과 거성(去聲)을 표시하는 것과는 달리 점을 찍지 않는 것으로 표시하였다.
[내용 및 특징]
중국어학에서 유래한 성조는 수나라와 당나라 때의 중고음(中古音)부터 이미 평성·거성·상성·입성(入聲)의 사성(四聲)으로 확립되어 운학(韻學)과 관련한 중국어 연구에서 중요한 위치를 차지해 왔다. 중국어의 모든 음절은 성조를 포함하고 있으며, 성조는 의미를 변별하는 성조소(聲調素)로서의 역할을 담당하였다.
중세 국어의 성조 중 평성은 상성·거성·입성 등의 측성(仄聲)과 평측(平仄)의 대립을 구축하였다. 우리말의 성조가 단순히 높낮이를 기준으로 하는 평판조(平板調) 체계였으므로 평성은 저조(低調)의 기준이었으며, 고조(高調)의 기준인 거성과 대립적인 양상을 보였다. 그에 비해 상성은 한 음절을 발음하는 과정에서 낮았다가 높아지는 형태의 가변(可變) 성조였으므로 기준에 포함되지 않았고, 입성의 경우는 높낮이가 아니라 촉급하게 닫는 소리[『세종실록』 28년 9월 29일], 다시 말해 소리의 완급을 나타내는 성조였으므로 고저의 기준이 될 수 없었다.
중세 국어에서 성조는 의미를 변별하는 역할을 하는 경우가 많았다. ‘손[客]/·손[手]’의 예에서 보듯 평성의 손은 손님을 뜻하고, 거성의 손은 신체의 일부인 손을 의미하였다. 이 두 단어는 일반 음운으로는 아무런 차이가 없지만, 발음의 높고 낮음에 의해 그 의미를 구별하였다. 따라서 성조는 동음어 등의 의미 구별에 특히 유용한 초분절음소(超分節音素)의 역할을 했음을 알 수 있다.
[변천]
성조는 의미를 변별하는 역할을 하였다. 음의 높낮이만으로 자음과 모음처럼 단어의 뜻을 구분할 수 있기 때문에 성조소(聲調素)라고 할 수 있다. 오늘날 베이징 어의 경우 과거와 다름없이 사성 체계로 이루어져 있지만, 평성·상성·거성·입성이 아니라 음평(陰平)·양평(陽平)·상성·거성으로 구성되어 있다. 그에 비해 국어의 경우에는 이런 변화에 그친 것이 아니라, 16세기 말에 이미 성조가 소멸된 것으로 보는 것이 일반적이다.
성조 체계의 붕괴는 국어사에서 중세 국어와 근대 국어를 구분하는 특징으로 꼽힌다. 중세 국어의 특징인 성조는 15세기에 당시의 훈민정음 창제를 간략하게 설명한 예의(例義) 부분에서 방점 표기 방법과 성조별 발음의 특징들과 함께 잠시 언급되었다[『세종실록』 28년 9월 29일]. 성조 표기는 1445년(세종 27) 훈민정음 최초의 문헌인 「용비어천가(龍飛御天歌)」를 비롯하여 『훈몽자회(訓蒙字會)』 등 16세기 전반의 서적에까지도 엄격하게 지켜졌다. 특히 1527년(중종 22)에 간행된 『훈몽자회』의 경우에는 범례(凡例)에서 글자의 고저가 있음을 언급하고 방점 찍는 법을 소개하면서, 특히 평성을 낮은 소리라고 언급하여 그때까지 성조에 대한 구분이 명확했음을 보여 준다. 그런데 1587년(선조 20)의 교정청(校正廳) 출간 문헌인 『소학언해(小學諺解)』에서는 방점 표기의 문란함이 나타나는 것으로 보아, 성조의 초분절음소로서의 역할 역시 이 시기 무렵에 사라진 것으로 추정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