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왕조실록사전을 편찬하고 인터넷으로 서비스하여 국내외 다양한 분야의 연구자와 일반 독자들이 왕조실록에 쉽게 접근할 수 있도록 하고자 합니다. 이를 통해 학술 문화 환경 변화에 부응하고 인문정보의 대중화를 선도하여 문화 산업 분야에서 실록의 활용을 극대화하기 위한 기반을 조성하고자 합니다.
[개설]
패초(牌招)는 왕이 대신 이하 삼사(三司) 관원을 승정원을 통해 명패를 전달하여 부르는 일을 말한다. 명패를 받은 관원은 대신 외에는 응하지 못할 사정이나 병환이 있더라도 궁궐에 와서 명패를 반납해야 했다. 이를 어기면 법규상 처벌받도록 되어 있었으나 후기에는 패초에 응하지 않는 사례가 빈번하여 패초를 엄히 해야 한다는 조정의 논의가 그치지 않았다.
[내용 및 특징]
승정원에서 왕명을 받들어 신하를 부를 때 명패를 사용하였으므로 ‘패(牌)로써 부른다.’는 뜻에서 이를 패초라 하였다. ‘패소(牌召)’ 또는 ‘명소(命召)·명초(命招)’라고도 칭한다.
이때 사용하는 명패는, 붉은 색칠을 한 나무판의 한쪽 면에 ‘명(命)’ 자를 쓰고 다른 면에는 해당 관원의 이름과 관직을 기재하였다. 붉은 칠을 하였기 때문에 이를 주패(朱牌)라고도 하며, 대신 이하 삼사 관원을 비롯한 주요 관원을 부를 때에만 사용하였다. 이에 반하여 한림(翰林)이나 주서(注書) 등 7품 이하의 하급 관원을 부를 때에는 분패(粉牌)를 사용하였다. 분패는 흰색 바탕을 쓰는 것으로, 명패와 분패의 구분은 부르는 신하를 지위의 고하로 구분하려는 뜻이 담겨있다. 한편 세자가 대리청정할 때에는 왕의 명패와는 달리 바탕을 푸른색으로 만든 청패(靑牌)를 사용하였다.
이런 절차가 필요했던 것은 조참이나 경연 등 예정된 의례가 아니면 2품 이상 당상관 이외의 관료들이 수시로 왕을 알현할 수가 없었기 때문이다. 따라서 긴급하게 필요한 관원의 입시를 명하고자 할 때, 야간에 대면할 필요가 있을 때 등에 패초가 요긴하게 활용될 수 있었다.
패초를 받으면 해당 신하는 정해진 시간 안에 입시해야 한다. 만약 입시하지 못할 사정이 있거나 자신이 병중에 있더라도 직접 궁궐에 와서 명패를 반납해야 한다. 이를 반납하지 않으면 2품 이상의 경우 엄중 추고(推考)하고, 정3품 통정대부 이하는 의금부에서 추고하도록 하는 내용이 『대전회통』을 비롯한 여러 법전에 수록되어 있다. 명패를 반납할 때 직접 나아오지 않은 경우에도 처벌하는데, 2품 이상이면 추고하고 통정대부 이하이면 파직하도록 하였다. 명패를 파손한 자에게는 장(杖) 90을 친 후 도(徒) 2년에 처한다. 또 3품 이하 관원이 하루에 세 번 패초를 어기면 왕명을 받아 승정원이 바로 의금부에 추고를 명할 수 있다.
그러나 법률을 어기면서까지 패초에 응하지 않는 사례가 빈번히 일어났다. 서너 번 부른 후에야 아침에 부르면 저녁에 오거나 하루가 지나서 오는가 하면[『성종실록』 8년 6월 23일], 의정부 낭청(郞廳)을 패초했는데 해가 질 무렵에야 서리(書吏)를 시켜 병으로 못 온다고 하는 사례도 있었다[『연산군일기』 8년 4월 20일]. 사안이 논의될 때마다 패초를 엄히 해야 한다는 조정의 논의가 반복되지만, 패초를 어기는 사례 역시 반복되고 있음을 『조선왕조실록』에서 확인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