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왕조실록사전을 편찬하고 인터넷으로 서비스하여 국내외 다양한 분야의 연구자와 일반 독자들이 왕조실록에 쉽게 접근할 수 있도록 하고자 합니다. 이를 통해 학술 문화 환경 변화에 부응하고 인문정보의 대중화를 선도하여 문화 산업 분야에서 실록의 활용을 극대화하기 위한 기반을 조성하고자 합니다.
[내용]
임진왜란 기간 동안 명나라의 새로운 전술인 척계광의 절강병법(浙江兵法)이 『기효신서』를 통해 조선에 도입되었다. 조선군의 군사 편제도 절강병법에 따라 개편되었다. 이에 따르면 대장(大將) 휘하에 5개 영(營)이 있고 영장(營將)이 통솔하였다. 영 아래에는 각각 5개 사(司)를 두고 파총이 통솔하도록 하였다. 사 아래에는 5개의 초(哨)가 있었고 지휘관으로 초관(哨官)을 두었다. 초 아래에는 3개 기(旗)를 두었고 기 아래에 12명으로 편성된 3개 대(隊)를 두었다. 이에 따라 일개 사는 600여 명의 군병으로 편성되었다. 사는 당시의 기본적인 군사 편제였으므로 파총은 조선의 중앙과 지방의 군영에 두루 배치되어 있었다. 예를 들어 훈련도감, 금위영, 어영청 등 한성에 주둔하는 중앙 군영의 경우 종4품의 파총이 5~6인이 있었다. 특히 번상군으로 편성된 금위영, 어영청의 경우에는 기타 외방에 있는 소속 군병을 통솔할 겸파총도 10여 명이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