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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용]
태청관(太淸觀)의 태청(太淸)은 도교 신앙의 종지(宗旨)인 삼청(三淸)의 하나이다. 도교에서는 삼청을 옥청원시천존(玉淸元始天尊), 상청영보천존(上淸靈寶天尊), 태청도덕천존(太淸道德天尊)으로 숭배한다.
태청관이 건립된 것은 고려시대이나 구체적인 시기는 알 수 없다. 태청관은 액운과 천재지변이 있을 때는 재초(齋醮)를 행하여 기양(祈禳)하였고, 군대를 움직일 때는 장수가 태청관에서 묵으면서 재계하고 재초를 올렸다. 또한 임금이 친히 전쟁에 나갈 때 사용하는 독기(纛旗)를 보관하였다. 충선왕 때에 종9품의 판관(判官)을 두었고, 공민왕 때에는 독기를 관리하는 관원으로 독적(纛赤)을 두었다.
조선시대에 들어서 1392년(태조 1)에 관제를 새로 정할 때에 태청관에 종9품의 판관 2명을 두었다. 1405년(태종 5)에 육조의 직무와 소속을 정할 때에는 예조에 소속되었다.
1416년에 개경 태청관에 봉안된 천황대제를 소격전(昭格殿)으로 옮겨 모시게 하였고, 1422년(세종 4)에는 개성의 태청관을 완전히 폐지하였다. 그러나 한양의 태청관은 언제 폐지되었는지 알 수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