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왕조실록사전을 편찬하고 인터넷으로 서비스하여 국내외 다양한 분야의 연구자와 일반 독자들이 왕조실록에 쉽게 접근할 수 있도록 하고자 합니다. 이를 통해 학술 문화 환경 변화에 부응하고 인문정보의 대중화를 선도하여 문화 산업 분야에서 실록의 활용을 극대화하기 위한 기반을 조성하고자 합니다.
[내용]
재(齋)는 원래 재계(齋戒)라는 뜻으로, 부처에게 복을 비는 것도 재라고 한다. 불교에서는 사람이 죽은 후 7일 간격으로 재(齋)를 지내는데, 첫 7일 만에 지내는 재를 초재(初齋)라 하고 49일째 지내는 재를 칠재(七齋), 100일째 지내는 재를 백재(百齋), 또는 백일재(百日齋)라고 한다.
『세종실록(世宗實錄)』 1446년(세종 28) 3월 29일 기사에 "초재(初齋)를 장의사(藏義寺)에서 베풀었다. 초재(初齋)부터 대상재(大祥齋)에 이르기까지 대자(大慈)·진관(津寬)·회암(會巖)·장의(藏義) 등의 절에 돌려가며 베풀고, 인순부(仁順府)·인수부(仁壽府)·내자시(內資寺)·내섬시(內贍寺)·예빈시(禮賓寺)·내수소(內需所)에서 서로 번갈아 판비(辦備)하게 하였다. 매번 재를 올릴 때마다 대군(大君)·승지(承旨)·예조(禮曹)의 당상(堂上) 각 1인이 가서 참예(參詣)하였는데, 반승(飯僧)이 적을 때는 8,000~9,000명, 많을 때는 10,000여 명이나 되었고, 잡객(雜客)이 수천명, 거지도 또한 항상 10,000여 명이나 되었다."고 기록되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