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왕조실록사전을 편찬하고 인터넷으로 서비스하여 국내외 다양한 분야의 연구자와 일반 독자들이 왕조실록에 쉽게 접근할 수 있도록 하고자 합니다. 이를 통해 학술 문화 환경 변화에 부응하고 인문정보의 대중화를 선도하여 문화 산업 분야에서 실록의 활용을 극대화하기 위한 기반을 조성하고자 합니다.
[내용]
고려·조선시대 사형은 초심·재심·삼심으로 반복해 심리를 한 뒤에 결정하는 삼복제(三覆制)였는데 이때 1차 복심을 초복(初覆), 2차 복심을 재복(再覆), 3차 복심을 삼복(三覆)이라 하였다.
『경국대전(經國大典)』 「형전(刑典)」 ‘추단(推斷)’조에 따르면 사형에 해당하는 죄수에 대해서는 세 번 심리하여 임금에게 보고[死罪三覆啓]하는데, 지방에서는 관찰사가 차사원(差使員)을 정하여 그 고을의 수령(守令)과 함께 추문(推問)하게 하고, 또 차사(差使) 2인을 정하여 재차 조사 심리하도록 하며, 또 직접 심문하여서 임금에게 보고하도록 되어 있다. 이러한 삼복제는 인명을 중시하고 죄인의 심리를 신중히 하기 위한 것으로 반복하여 조사해서 죄인이 억울하게 죽음을 당하는 일이 없도록 하기 위한 제도이다. 이 삼복 중 처음 하는 조사를 초복이라 하였다.
[용례]
且三覆之法 爲死人求生道也 待時之法 所以順天時也 皆先王成憲美意 唐時至令五覆 本朝降爲三覆 且初覆則必致謹愼 至再三 則漸至忽略 然不可輕廢 亦我愛禮之意 皆不允[『세조실록』 2년 3월 9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