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왕조실록사전을 편찬하고 인터넷으로 서비스하여 국내외 다양한 분야의 연구자와 일반 독자들이 왕조실록에 쉽게 접근할 수 있도록 하고자 합니다. 이를 통해 학술 문화 환경 변화에 부응하고 인문정보의 대중화를 선도하여 문화 산업 분야에서 실록의 활용을 극대화하기 위한 기반을 조성하고자 합니다.
[내용]
조선시대에 사용하던 『대명률』의 형벌 체제는 태(笞)·장(杖)·도(徒)·유(流)·사(死)의 5형(刑) 체제를 기본으로 하였다. 5형 중에 가장 무거운 형벌인 사형(死刑)은 교형(絞刑)과 참형(斬刑)으로 구분되었는데, 반역(反逆)·강상(綱常) 죄인 등과 같은 경우는 능지처사(陵遲處死)를 규정하고 있다.
조선 왕조에서는 『대명률』에서 규정하고 있는 사형 외의 극형(極刑)도 시행되었는데, 책형(磔刑)·거열(車裂)·효수(梟首)·육시(戮屍)·약살(藥殺) 등이 그 예이다. 『조선왕조실록』에 책형(磔刑)을 시행했다는 기사가 있기는 하지만 그 집행 방식이 어떠했는지는 구체적으로 기록되어 있지 않다. 1589년(선조 22)에는 반역을 공모(共謀)한 박연령(朴延齡)이 군기시(軍器寺) 앞에서 책형에 처해졌으며, 1738년(영조 14)에도 죄인을 저자에서 책형에 처한 예가 있다.
책형은 중국 고대(古代)에는 죄인을 수레에 매어 사지(四肢)를 찢는 것이었는데, 이후 오대(五代)에 이르러 능지처사를 뜻하는 것이 되었다. 능지처사는 생체(生體)인 채로 죄인의 살점을 도려내어 뼈만을 남기거나 지체(肢體)를 자르는 잔혹한 형벌이었다. 하지만 조선 왕조에서는 능지처사를 시행하지 않고 거열형으로 대신했기에 책형 역시 같은 방식으로 집행되었을 것이라고 생각할 수 있다.
반면 일본에서도 ‘책형(磔刑)’이라는 이름의 형벌이 있었다. 하지만 그 집행 방식은 조선이나 중국과는 전혀 달라서, 죄인을 기둥에 묶은 후 두 명의 집행자가 기둥 좌우에 나란히 서서 창(槍)을 사용해 번갈아가며 수십 차례 찔러서 죽이는 것이었다. 또한 서양의 십자가형 역시 책형이라고 한다.
[용례]
戊申己酉間 我國筑前州豪民僞船 潛通貴國 貿易禁物 其黨數十人 事覺盡就磔刑 家資鉅萬 沒輸官庫[『숙종실록』 8년 7월 11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