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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의]
조선시대에 이조에서 무록관, 제관 등을 정식의 제수절차를 밟지 않고 간단하게 임명한 인사제도.
[개설]
차정은 이조(吏曹) 문선사(文選司)에서 담당하는 업무 중의 하나였다. 그러면서도 이 용어는 특정한 직에 ‘임명한다’라는 뜻의 일반 명사로 더욱 널리 쓰였다. 여기서 특정한 직은 정직 중의 특수직이 아니라 보통 녹사(錄事)와 성중관 등 무록관(無祿官)이나 제관(祭官) 등 임시직, 군병이나 장교, 국역 담당자 등을 말하며 나아가서 민간에서의 공무 담임자도 포함되었다.
[제정 경위 및 목적]
차(差)는 사람이나 물건을 ‘가리다’ 혹은 ‘선택하다’라는 뜻으로, 차정은 관원의 임명을 의미하였다. 도목정(都目政)이나 산정(散政)의 정식 임용 절차를 거쳐 제수되는 것이 아니라, 공무를 임시로 담당할 적임자를 선발하는 제도였다. 따라서 그 역할이 끝나면 자동으로 면직되거나 전보되었다.
[내용]
차정은 임시 관직에 적임자를 뽑아 정한다는 말이었다. 『경국대전』 「이전」 차정조에는 “무릇 차정해야 할 자는 녹명(祿名)하여 왕에게 아뢰었다. 향관(享官) 3품 이하 및 아전(衙前)은 아뢰지 아니한다.” 하였다. 따라서 차정은 녹봉을 지급 받는 임시 관원을 임명할 때 사용하는 법률 용어였다.
차정 절차는 이조에서 후보자를 선발하여 왕에게 보고하면, 적임자를 낙점하여 서경(署經)을 거쳐서 교지를 내렸다. 그러나 향관 3품 이하, 곧 3품 이하의 임시직과 서리 이하는 왕에게 아뢰지 않고 이조에서 차정할 수 있었다.
[변천]
차정의 용례는 “혜민국(惠民局)과 제생원(濟生院)에는 제거(提擧)와 별좌(別坐) 중 1명과 겸승(兼丞) 1명을 박학(博學)하고 강정(剛正)하며 근근(勤謹)한 문사로 차정하라[『세종실록』 16년 7월 25일]”라든가, “새로 급제한 자를 분관(分館)할 때에 이조로 하여금 나이 젊고 글씨 잘 쓰는 자를 골라서 차정하게 하라[『세종실록』 22년 1월 10일], “사직과 종묘에 섭행하는 큰 제사의 천조관(薦俎官)·종헌관(終獻官)은 모두 참의(參議) 이하, 부제학(副提學) 이상의 당상관으로 낙점을 받아 차정하소서[『세종실록』 14년 7월 24일]” 한 것들을 들 수 있다. 관직의 유무를 불문하고, 임시직이나 특수한 역할을 담당할 적임자를 선발한다는 용어로 주로 쓰였다.
그렇기 때문에 『속대전』 등 법전의 차정 조에는 특정 직임에 선발할 관원의 자격 기준을 규정해 놓았다. 왕이 친림하여 시학(視學)할 때 강서관(講書官)의 자격이라든가, 절사(節使)를 영위(迎慰)하는 임무는 종반(宗班)으로 차정하지 말도록 한 것 등이었다. 후자는 후에 대신이 유고(有故)면 종친과 의빈(儀賓) 및 2품 이상을 추천하여 임명하도록 하였다. 또한 형조 및 주원(廚院)의 낭청은 대제(大祭) 외에는 제관으로 차출하지 말도록 하였다.
차정 대상을 미리 정해 놓은 규정도 있는데 멀리 떨어진 지역에 소재하는 각 능전(陵殿)의 헌관과 집사, 참봉 가관(假官)의 대상에 관한 규정을 들 수 있다. 위법에 대한 처벌 조항도 수록되었는데, 각 능은 예조(禮曹)의 차첩(差帖) 없이 사사로이 대신 수직(守直)하면, 담당 관원과 대신 수직한 사람 모두 제서유위율(制書有違律), 즉 제서(制書)에 적힌 왕의 명령을 어긴 행위를 처벌하던 법규를 시행하도록 하였다. 따라서 차정된 인원에게는 이조에서 차첩을 발급하였음을 알 수 있다.
이외에 노비(奴婢)와 근수노(跟隨奴) 등의 차정에 관한 사항도 규정되어 있는 것으로 보아, 차정은 일반 명사로서 신분에 관계없이 폭넓게 사용되었음을 알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