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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의]
비정기적인 사절로, 중국에 국상(國喪)이 나면 향과 제문(祭文)을 가지고 가던 사절.
[내용]
조선시대에 중국의 황실에 상사(喪事)가 났을 때 제문과 제폐(祭幣)를 가지고 가서 조의(弔意)를 표하게 하던 사절이다. 대개 진위사(陳慰使)와 함께 파견되었다. 진위사와 함께 파견되면 정사는 진위사, 부사는 진향사가 되고, 1명의 서장관이 진위·진향을 겸임하는 것이 상례였다. 이 밖의 종사관 및 통사 그리고 의원·사자관·화원과 노자 등을 합하여 일행은 대개 40여 명이었다. 이 사절이 휴대하는 문서는 진향제문(進香祭文)과 위로하는 전문(箋文), 예부로 보내는 자문(咨文) 등이었다.
[용례]
改計稟使偰長壽爲進香使 同金士衡 河崙入朝 初 長壽至婆娑鋪 遼東都司以非三年一聘之期不納 長壽還至義州 移書左政丞趙浚曰 請每年朝聘事 宜更奏聞 否則於陳慰 進香使差遣 於是 啓爲進香使[『정종실록』 1년 1월 9일]
[참고문헌]
■ 『대전회통(大典會通)』
■ 『통문관지(通文館志)』
■ 『동문휘고(同文彙考)』
■ 『증보문헌비고(增補文獻備考)』
■ 김송희, 「조선초기 대명외교에 대한 연구-대명사신과 명 사신 영접관의 성격을 중심으로-」, 『사학연구』 55·56, 1998.
■ 박성주, 「조선초기 遣明 使節에 대한 一考察」, 『경주사학』 19, 경주사학회, 2000.
■ 박성주, 「高麗·朝鮮의 遣明使 硏究」, 동국대학교 박사학위논문, 200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