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주조선왕조실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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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제교(知製敎)

서지사항
항목명지제교(知製敎)
용어구분전문주석
상위어겸직(兼職), 당하관(堂下官), 참상관(參上官)
관련어규장각(奎章閣), 내지제교(內知製敎), 예문관(藝文館), 외지제교(外知製敎), 의정부(議政府) 사인(舍人), 서경(署經), 직예문관(直藝文館), 집현전(集賢殿), 홍문관(弘文館)
분야정치
유형직역
자료문의한국학중앙연구원 한국학정보화실


[정의]
외교문서와 왕의 교서(敎書)를 짓는 일을 맡아보던 관원.

[개설]
지제교(知製敎)는 외교문서인 표·전(表·箋)과 왕이 내리는 교서의 글을 짓는 일을 맡은 관원으로, 크고 작은 제문(祭文)도 지어 올렸다. 중국 당나라와 송나라의 지제고(知制誥) 제도에 따라 지제교도 내제(內制)와 외제(外制)로 구별하였다. 집현전(集賢殿)이나 홍문관(弘文館)의 관원이 겸임하는 경우는 내지제교(內知製敎)라 하였고, 6품 이상의 문신(文臣) 중에서 임명되는 경우는 외지제교(外知製敎)라 하였다.

[담당 직무]
고려시대의 지제고에 이어 조선시대에도 설치되었다. 지제교는 외교문서를 작성하고 왕을 대신해 교서의 글을 지었다. 국가의 크고 작은 제문도 왕의 명에 따라 지어 올렸다.

[변천]
조선 건국 후 1392년(태조 1)에 예문춘추관의 관제는 예문관(藝文館) 대학사(大學士)와 학사(學士), 참하관인 공봉(供奉)·수찬(修撰)·직관(直館)을 녹관(祿官)으로 하고 나머지 관원을 겸관으로 운영하였다. 예문관의 대학사와 학사가 녹관으로 된 것은, 고려후기부터 왕의 고문(顧問)으로서의 기능과 경연이 서서히 중요해지면서 이들 관직이 전문화될 필요가 있었기 때문이었다. 이는 『고려사』 「백관지」와 1392년 7월의 예문관 기능에 대한 정의에서도 잘 나타난다. 『고려사』「백관지」에서는 예문관의 기능을 왕의 명령이나 글을 대신 짓는 것으로 정의하였다. 이에 비하여, 1392년 7월에는 예문춘추관이 이전의 기능에 더하여 논의(論議)와 국사(國史)를 맡는다고 정의하였다. 하지만 이는 반대로 이 무렵 지제교의 역할이 바로 예문관에 배속되었음을 보여주는 증거이기도 하다.

문한관이 정비되지 않은 상황에서 지제교의 역할은 여러 관직에서 맡았던 것으로 보인다. 1413년(태종 13)에는 의정부(議政府) 사인(舍人)이 지제교를 맡은 사례가 보이고, 1416년(태종 16)에는 직예문관(直藝文館) 박희중(朴熙中)이 지제교를 맡고 있었다.

집현전이 설치된 뒤에는 집현전 학사에게 외지제교로 겸임시켰다. 1429년(세종 11)에는 집현전의 녹관이 내지제교를 겸임했고, 문신 10명을 선발하여 외지제교로 삼았다. 『경국대전』에는, 홍문관 부제학(副提學)부터 부수찬(副修撰)에 이르는 관원과, 별도로 선발한 6품 이상의 문신이 지제교를 겸임했다. 지제교도 사헌부와 사간원의 서경(署經)을 거쳐 임명되었다.

『대전통편』에 의하면 홍문관 부제학 이하의 관원이 겸임하는 것을 내지제교라 불렀다. 또한 대제학이 이조 판서와 상의하여 6품 이상의 관원 가운데 특별히 뽑은 후보자를 초록(抄錄)하여 왕에게 아뢰어 지제교로 임명하는 것을 외지제교라고 불렀다. 외지제교는 정3품 통정대부(通政大夫)의 품계에 이를 때까지 겸임하였으며, 규장각의 직제학 이하 관원은 현임·전임을 막론하고 모두 외지제교를 겸임하였다.

[참고문헌]
■ 『고려사(高麗史)』
■ 『경국대전(經國大典)』
■ 『대전통편(大典通編)』
■ 귀천 원유한 교수 정년 기념 논총 간행위원회 편, 『귀천 원유한 교수 정년 기념 논총』 상·하, 혜안, 2000.
■ 김송희, 「조선초기의 당상관 겸직제에 대한 연구: 동반 경관직과 임시관직을 중심으로」, 한양대학교 박사학위논문, 1997.
■ 박천규, 「문형고」, 『사학지』 6, 1972.
■ 오항녕, 「조선초기 문한관서의 정비와 사관제도」, 『한국사학보』 7, 1999.
■ 유영옥, 「집현전의 운영과 사상적 경향: 성리학 이해를 중심으로」, 『부대사학』 18, 1994.
■ 정두희, 「집현전 학사 연구」, 『전북사학』 4, 1980.
■ 최승희, 「조선초기 언관에 관한 연구: 집현전의 언관화」, 『한국사론』 1, 1973.
■ 최인기, 「조선초기 문원 연구」, 성균관대학교 박사학위논문, 2010.

■ [집필자] 오항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