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왕조실록사전을 편찬하고 인터넷으로 서비스하여 국내외 다양한 분야의 연구자와 일반 독자들이 왕조실록에 쉽게 접근할 수 있도록 하고자 합니다. 이를 통해 학술 문화 환경 변화에 부응하고 인문정보의 대중화를 선도하여 문화 산업 분야에서 실록의 활용을 극대화하기 위한 기반을 조성하고자 합니다.
[내용]
왕릉을 조성할 때 능 양쪽에 두 개의 석주를 세우는데 이를 망주석이라 하며, 망주석의 상부 팔각기둥 부분을 전죽석(錢竹石)이라 한다. 1420년(세종 2) 1월 기사를 보면 순효대왕 묘실 제도와 규모를 규정할 때 전죽석의 구성과 규모에 대해 상세히 기록하고 있다. 또한 1425년(세종 7) 10월 기사에는 원래 전죽석이라 불리던 것을 중국의 국조 예제(禮制)에 따라 석망주(石望柱)라 고쳐 부르는 상황이 기록되어 있어, 전죽석은 석망주의 옛 이름임을 확인할 수 있다.
[용례]
錢竹石二 (以一尺爲圓頭 次以頭下一尺五寸 上刻仰蓮 下刻雲彩 次以四尺一寸作八面 其圓徑一尺一寸) 高各六尺四寸[『세종실록』 2년 1월 3일]
禮曹啓 事林廣記云 國朝禮制 墓制石望柱二 我朝諸陵制度儀軌 稱錢竹石 是因襲俗稱未便 乞依朝廷之制 諸陵儀軌內錢竹石 皆以望柱石追改 從之[『세종실록』 7년 10월 16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