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주조선왕조실록

조선왕조실록사전을 편찬하고 인터넷으로 서비스하여 국내외 다양한 분야의 연구자와 일반 독자들이 왕조실록에 쉽게 접근할 수 있도록 하고자 합니다. 이를 통해 학술 문화 환경 변화에 부응하고 인문정보의 대중화를 선도하여 문화 산업 분야에서 실록의 활용을 극대화하기 위한 기반을 조성하고자 합니다.
※자료문의 : 한국학중앙연구원 031-730-8765

정난공신(定難功臣)

서지사항
항목명정난공신(定難功臣)
용어구분용어용례
상위어공신(功臣)
하위어추성보사우세정난공신(推誠保社佑世定難功臣), 추성보사정난공신(推誠保社定難功臣), 추성정난공신(推誠定難功臣)
관련어이과(李顆)의 역모(逆謀)
분야정치
유형개념용어
자료문의한국학중앙연구원 한국학정보화실

※자료문의 연락처: 한국학중앙연구원 031-730-8765


[정의]
이과의 역모를 평정한 공로로 중중대에 책봉된 공신.

[내용]
1507년(중종 2) 8월 25일 밤 4경에 전 우림위 노영손이 승정원에 고변하였는데, 정국공신에 책봉되지 못한 이과(李顆)·종친 이찬·윤귀수·김잠·손유 등이 불만을 품고 박원종과 성희안을 제거한 후 견성군을 왕으로 추대하려 하였으며 주모자는 이과라고 하는 내용이었다. 옥사가 마무리된 같은 해 9월 2일에 22명의 정난공신이 책봉되었다. 1등은 추성보사우세정난공신(推誠保社佑世定難功臣)이라 하였는데 노영손·유순·박원종 등 5명이었다. 추성보사정난공신(推誠保社定難功臣)이라 불린 2등은 민효증·이계남·홍경주 등 5명이었으며, 추성정난공신(推誠定難功臣)이라 불린 3등은 설맹손·홍숙·안당 등 12명이었다.

그런데 정난공신에 대한 비난이 책봉 직후부터 일어나기 시작하였다. 고변자인 노영순을 제외한 사람들을 공신에 책봉할 이유가 없다는 것이 비판의 초점이었다. 결국 정난공신이 책봉된 지 10년 후에는 노영신을 제외한 모든 사람들이 공신에서 삭제되기에 이르렀다.

[용례]
上御勤政殿 行定難功臣分軸 宴用女樂[『중종실록』 2년 11월 30일]

[참고문헌]
■ 『신증동국여지승람(新增東國輿地勝覽)』
■ 『국조공신록(國朝功臣錄)』
■ 『연려실기술(燃藜室記述)』
■ 신명호, 『조선의 공신들』, 가람기획, 2003.

■ [집필자] 신명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