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주조선왕조실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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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주지(楮注紙)

서지사항
항목명저주지(楮注紙)
용어구분전문주석
상위어주지(注紙), 주지(奏紙)
관련어저화(楮貨), 초주지(草注紙), 주지(注紙)
분야교육 출판
유형물품 도구
자료문의한국학중앙연구원 한국학정보화실


[정의]
조선시대 왕실 및 중앙 관아에서 보편적으로 사용하던 대표적인 종이.

[개설]
저주지(楮注紙)는 초주지(草注紙)와 비교하면 하품(下品)이지만 왕실 및 중앙 관아에서 문서를 작성할 때나 왕실의 배포용 책자를 제작할 때 사용하던 일반적인 종이이다. 저주지는 초주지와 구분되어 어람용 책자에는 초주지를, 배포용·내사용 책자에는 저주지를 사용하도록 규정되었던 종이이다.

[형태]
『탁지준절』에 의하면 저주지의 크기는 길이 2자 2치 5푼, 너비 1자 7치이며, 1장의 가격은 6푼 6리이다. 저주지는 초주지와 크기는 비슷하지만 가격은 4배 정도 저렴하다. 특히 저주지는 색깔을 입힌 종류가 많아서 옥색저주지(玉色楮注紙), 홍저주지(紅楮注紙), 초록저주지(草綠楮注紙), 청저주지(靑楮注紙), 황저주지(黃楮注紙) 등이 별도의 품목으로 가격이 정해졌다.

[생활·민속 관련 사항]
저주지는 왕실 및 중앙 관아에서 문서를 작성할 때나 왕실의 배포용 책자를 제작할 때 사용하던 종이였으므로 사용처가 매우 다양하였다.

첫째, 저주지가 왕실·중앙 관아의 문서에 사용된 경우는 국왕의 명령문서인 교서, 승정원의 담당 승지가 국왕의 뜻을 전하던 유지(有旨), 국왕이 관리에게 내렸던 임명장인 관교(官敎), 정승 등의 사직을 윤허하지 않는다는 국왕의 답서인 불윤비답(不允批答), 관원들의 품계를 올려 주기 위해 국왕이 내렸던 가자(加資), 승문원에서 공사(公事)나 논죄에 관해 국왕에게 아뢰던 계사(啓辭), 정승을 새로 뽑는 복상(卜相)에 대한 계사, 중앙 기관에서 국왕에게 상주할 내용을 간략하게 요약한 초기(草記), 관보 성격인 조보(朝報), 국가의 종묘 천신(薦新)에 소용되는 단자, 중앙 기관에서 국왕에게 올리던 계목(啓目), 의금부·사헌부·사간원·이조·비변사·종부시 등의 계목, 자문(咨文)에 들어가는 계단자(啓單子), 승정원·호위청·승문원 등의 계단자, 내시부의 비초(批草), 벼슬아치가 국왕에게 보고하던 장계 등이다.

둘째, 문장이나 글의 작성에도 저주지를 사용하였다. 지제교가 왕에게 바치던 문장, 각종 제문과 축문, 왕세자 교육을 담당하던 시강원에서의 문장에 대한 문답서, 국왕이 신하의 바른말을 널리 구했던 구언(求言)과 국왕의 뜻인 전지(傳旨) 반포, 매월 시행하는 월과제술(月課製述), 승정원에서 40세 이하의 당하문관을 추려서 매월 초하루에 써 올리게 하였던 삭서(朔書) 등을 작성할 때 저주지가 사용되었다.

셋째, 중요한 기록물을 책자로 작성 시에도 저주지를 사용하였다. 왕실이나 국가의 주요 행사의 내용을 정리한 의궤, 국왕이 중죄인을 직접 신문하던 친국 기록, 식년마다 설치되는 족보청의 정안(正案), 왕실 능의 도형(圖形) 작성, 어보(御寶) 등의 인장 치부책(置簿冊) 종이, 의금부에서 죄인을 신문하던 추국을 기록한 정서(正書), 각처(各處)의 선생안(先生案) 작성 등에 사용되었다.

넷째, 물건의 싸개·봉투로 저주지를 사용하였다. 그 사례로는 내의원인 내국(內局)의 향을 싸던 종이, 더위 먹거나 설사하는 데 쓰이는 향유산(香薷散)을 싸는 종이, 각종 약재를 싸던 종이, 단오에 사용하는 단오선(端午扇)을 싸던 종이, 사도시에서 공상(供上)하는 광대두(廣大豆)와 겨자[芥子]를 싸던 종이, 내의원인 내국에서 제조하는 가루약의 첩(貼) 종이, 애화(艾花)를 싸서 봉하던 종이, 마른날에 신는 부녀자용 가죽신인 온혜(溫鞋)를 싸던 종이, 인동다(忍冬茶)를 싸던 종이, 삼두음(三豆飮)의 재료인 녹두·팥·검정콩을 싸던 종이, 간병약을 싸던 종이 등에 사용되었다.

다섯째, 문서·책자·물건 등의 싸개·봉투 이외에도 다양한 경우에 저주지를 사용하였다. 구체적인 용도로는 국왕에게 강의하며 사용하던 진강용(進講用) 책자의 표지 속지[進講冊衣隔], 궁중 제사에 사용하는 향과 축문을 관리하던 향실(香室)의 수압단자(受押單子)에 사용된 종이, 삭서(朔書)에서 하사하던 상격(賞格) 물품, 켜와 켜 사이에 끼운 격지(隔紙), 사학(四學)에서 과거 문제를 내걸던 현제(懸題)의 종이, 과장(科場)에서 내걸었던 과거 문제의 풀이[懸題解題]에 사용된 종이, 명함(名銜)에 사용된 종이, 각처의 창호지, 중앙 각 관서에서 필요한 물자를 조달하던 별례방의 업무 공사에 사용된 종이 등이 이에 해당된다.

[참고문헌]
■ 『승정원일기(承政院日記)』
■ 『선원보략교정청의궤(璿源譜略校正廳儀軌)』
■ 『탁지준절(度支準折)』
■ 『고사신서(攷事新書)』
■ 『장서각소장의궤해제』, 한국정신문화연구원, 2002.
■ 손계영, 「고문서에 사용된 종이 연구」, 『고문서연구』25, 2004.
■ 손계영, 「조선시대의 초주지와 저주지」, 『서지학보』29, 2005.

■ [집필자] 손계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