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주조선왕조실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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잠상(潛商)

서지사항
항목명잠상(潛商)
용어구분전문주석
관련어내상(萊商), 만상(灣商), 밀무역(密貿易), 범월(犯越), 변금(邊禁), 사상(私商), 사상대고(私商大賈)
분야정치
유형집단 기구
자료문의한국학중앙연구원 한국학정보화실


[정의]
사상(私商) 중에서 비합법적인 형태의 밀무역을 통하여 무역 활동을 하는 상인.

[개설]
잠상은 생계를 유지하기 위하여 불법적으로 범월하는 상인을 가리키기도 하였으나 일반적으로 불법적인 밀무역으로 무역 활동을 전개하는 사상을 가리켰다. 그러므로 잠상의 등장은 조선의 대청무역 정책과 관련이 있었다. 잠상이 성행할수록 정부의 규제가 한층 더 강화되었으나 잠상의 무역 활동을 완전히 막을 수는 없었다.

[설립 경위 및 목적]
잠상이 발생할 수밖에 없는 원인은 크게 2가지였다. 하나는 공납의 강제, 또는 기근, 전염병 등 자연적 요인에 의하여 범월하여 몰래 매매하며 생계를 유지하려 한 잠상이다. 이러한 현상은 어느 시대에나 있었으므로, 역사적 의미를 지니기는 어렵다. 다른 하나는 사상대고(私商大賈)임에도 불구하고 시대에 따라 양성화되기도 하고 음성화되기도 하면서 전근대 사회의 경제구조 및 사회구조의 변동을 추동하였던 잠상을 들 수 있다. 이들은 주로 조선후기에 등장하는데, 시기에 따라 조선 정부로부터 승인을 받아 공식적으로 활동하기도 하였고, 때로는 사행단의 일원인 역관과 관계를 맺어 대청무역에 참여하기도 하였다. 이럴 경우 이들은 사상으로 인식되었다. 한편 시대 상황에 따라 이들의 활동이 전면 금지되기도 하였는데, 이때 규제를 무시하고 활동하게 되면 잠상으로 인식되었던 것이다.

그러므로 조선후기 잠상은 정부의 무역 정책에 따라 그 신분이 달라졌다. 조선 정부가 역관 및 그들과 연결된 상인들에게만 무역을 허용하는 것으로 정책 방향을 설정하면, 여기에서 배제된 상인은 모두 잠상이 되었다. 다시 말해 압록강 도강을 위한 목패를 받지 못한 상인, 단련사와 여마제, 연복제에 편승하지 못한 상인은 모두 잠상이 되는 것이다.

[조직 및 역할]
조선후기 잠상의 활동이 두드러진 것은 크게 두 시기로 나누어 볼 수 있다. 첫째는 18세기 전반의 잠상이다. 1723년(경종 3) 조선 정부는 부연역관들에 의하여 책문후시를 조정하던 난두를 혁파하였다. 1725년(영조 1)에는 연복제를 혁파한 데 이어 1728년(영조 4) 심양팔포 무역과 단련사제가 혁파되었다. 사상들의 주요 무역 수단이었던 제도가 폐지됨으로써 사상 층의 무역로는 사실상 완전히 봉쇄된 것이었다. 결국 사상들은 비합법적인 무역을 감행하는 잠상으로 그 성격이 변질되었다. 연복무역, 즉 책문에서의 무역 활동이 금지된 이후 잠상 행위를 한 상인들은 주로 이전 시기 책문과 심양 교역을 주도하였던 의주상인과 개성상인이었다.

둘째는 19세기의 잠상이다. 이들은 대청무역 참여를 허가받은 의주상인, 대청교역품의 국내 유통을 장악한 서울의 개성상인, 그리고 중앙관부와 연결이 쉬웠던 경강상인 및 사행로에 위치한 평안도와 황해도의 상인이 대부분이었다. 이들은 자본 규모와 무역 물종 및 규모에 있어 다양한 모습을 보이면서 때로는 합법적으로 때로는 불법적인 밀무역을 통하여 조선과 청국 사이의 변금(邊禁)을 허물고 있었다.

[변천]
조선 정부는 사행무역에서 잠상의 밀무역을 규제하기 위하여 여러 가지 대책을 내 놓았다. 첫째는 사행에 참여하는 인원의 확실한 규제로 목패 없이 들어간 잠상을 엄격히 규제하는 동시에 철저한 상업세 부과로 연상을 통제하려는 방안이었다. 둘째로 사행팔포와 별포무역을 철저하게 규제하는 것이었다. 사행팔포나 포외별송 등 공식적으로 반출이 허용된 무역을 이용하여 벌어지는 밀무역을 막고자 하였던 것이다. 가장 대표적으로 1754년(영조 30) 정해진 비포절목이 있다. 셋째로 조선 정부는 수출입금지 품목을 명확히 하고 금지된 물품의 반입과 반출을 철저히 막고자 했다.(하였다.)

특히 조선 정부는 19세기 잠상을 막기 위하여 여러 대책을 강구하였다. 포삼무역의 규모가 커지자 개성상인은 불법적인 홍삼제조인 잠조를 자행하였고, 의주 상인은 허락 없이 국경을 넘나드는 잠월을 서슴지 않아 이를 막기 위한 강력한 대책이 제시되었다. 첫째는 잠상과 탈세를 막기 위하여 사행 시 제반 규정을 총체적으로 재검토하는 것이었으며 둘째는 의주상인의 잠월과 개성상인의 잠조를 구조적으로 차단하는 것이었다. 그러나 잠상을 적발해야 할 의주부와 개성부에서는 오히려 이들을 보호해 주고, 그 대가로 세를 받아 챙겼다. 이때 이들이 받은 세를 합안세라고 한다. 19세기 후반에 이르면 잠상의 잠월 형태가 육로를 벗어나 해상을 통한 밀교역의 형태로까지 확대되었다. 또한 잠조는 개성, 잠월은 의주라는 통념을 깨고 각처에서 홍삼이 잠조되어 잠월되는 특징을 나타내었다.

[참고문헌]
■ 이철성, 『조선후기 대청무역사 연구』, 국학자료원, 2000.
■ 이철성, 「조선후기 무역상인과 정부의 밀무역 대책」, 『사총』 58, 2004.

■ [집필자] 이철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