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주조선왕조실록

조선왕조실록사전을 편찬하고 인터넷으로 서비스하여 국내외 다양한 분야의 연구자와 일반 독자들이 왕조실록에 쉽게 접근할 수 있도록 하고자 합니다. 이를 통해 학술 문화 환경 변화에 부응하고 인문정보의 대중화를 선도하여 문화 산업 분야에서 실록의 활용을 극대화하기 위한 기반을 조성하고자 합니다.
※자료문의 : 한국학중앙연구원 031-730-8765

익대공신(翊戴功臣)

서지사항
항목명익대공신(翊戴功臣)
용어구분용어용례
상위어공신(功臣)
하위어수충보사병기정난익대공신(輸忠保社炳幾定難翊戴功臣), 수충보사정난익대신(輸忠保社定難翊戴功臣), 추충정난익대공신(推忠定難翊戴功臣)
관련어남이(南怡)
분야정치
유형개념용어
자료문의한국학중앙연구원 한국학정보화실

※자료문의 연락처: 한국학중앙연구원 031-730-8765


[정의]
남이 장군의 역모를 평정한 공로로 예종대에 책봉된 공신.

[내용]
1468년(세조 14) 병조참지 유자광이 남이 장군을 역모 혐의로 고변한 것을 계기로 일어나 옥사가 마무리된 후 책봉된 공신이었다. 같은 해 10월 28일 예종은 남이의 역모사건을 평정한 사람들을 익대공신으로 녹훈하였다. 총 37명의 익대공신 중 1등은 수충보사병기정난익대공신(輸忠保社炳幾定難翊戴功臣)이라 하였으며 유자광·신숙주·한명회 등 5명이었다. 수충보사정난익대신(輸忠保社定難翊戴功臣)이라 불린 2등은 이침·이서·박원형 등 10명이었으며, 추충정난익대공신(推忠定難翊戴功臣)이라 불린 3등은 정인지·정창손·한백륜 등 22명이었다.

익대공신의 원훈이었던 유자광은 중종반정 이후 정국공신 1등에까지 올랐지만 결국에는 연산군대에 무오사화를 일으킨 죄로 귀양에 처해졌고 기왕의 공신에서는 삭탈되었다.

[용례]
傳曰 予欲策勳 其議功臣號 分三等以啓 申叔舟等議啓 一等曰輸忠保社炳幾定難翊戴 二等曰輸忠保社定難翊戴 三等曰推忠定難翊戴[『예종실록』 즉위년 10월 28일]

[참고문헌]
■ 『신증동국여지승람(新增東國輿地勝覽)』
■ 『국조공신록(國朝功臣錄)』
■ 『연려실기술(燃藜室記述)』
■ 신명호, 『조선의 공신들』, 가람기획, 2003.

■ [집필자] 신명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