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왕조실록사전을 편찬하고 인터넷으로 서비스하여 국내외 다양한 분야의 연구자와 일반 독자들이 왕조실록에 쉽게 접근할 수 있도록 하고자 합니다. 이를 통해 학술 문화 환경 변화에 부응하고 인문정보의 대중화를 선도하여 문화 산업 분야에서 실록의 활용을 극대화하기 위한 기반을 조성하고자 합니다.
[개설]
고려 충렬왕 이후 왕실의 사적 용도가 많아지면서 그 필요를 공급하기 위해 의성고를 설치하였다. 조선이 건국한 이후에도 고려의 제도를 따라 설치되었다.
[설립 경위 및 목적]
고려가 원(元)나라를 섬기면서 대대로 원의 공주를 맞이하자 궁중의 지출이 많아졌다. 또 연경(燕京)에 친조(親朝)하거나 그곳에 머무를 때 드는 재물도 고려가 스스로 마련해야 했다. 이에 의성고와 덕천고(德泉庫) 등의 창고를 설치하여 이 같은 용도에 대비토록 하였다.
[조직 및 역할]
조직에 대해서는 구체적으로 알 수 없으나 1395년(태조 4)에 이색(李穡)을 의성고 등 5고(五庫) 도제조(都提調)로 삼았다는 기록이 있는 것으로 보아 의성고를 담당하는 제조가 있었을 것으로 생각된다[『태조실록』 4년 12월 22일]. 또한 실무를 담당하는 별감(別監)이 있었다.
[변천]
조선초에 설치된 의성고는 1403년(태종 3) 쓸데없는 관원을 없애고 관제를 고칠 때 관아와 그 관원이 내자시(內資寺)에 병합되면서 소멸하였다[『태종실록』 3년 6월 29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