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주조선왕조실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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육화석포(六花石砲)

서지사항
항목명육화석포(六花石砲)
용어구분전문주석
동의어석포(石砲)
관련어고려(高麗), 최무선(崔茂宣), 화통도감(火㷁都監), 뇌등석포(雷騰石砲), 완구(碗口)
분야정치
유형물품 도구
자료문의한국학중앙연구원 한국학정보화실


[정의]
고려와 조선시대의 화약 병기로, 둥근 형태의 돌로 만든 포환을 발사하는 무기.

[개설]
육화석포(六花石砲)는 조선시대의 완구(碗口)와 비슷한 것으로, 둥근 형태의 돌로 만든 포환을 발사하는 무기로 추측된다. 완구는 대포의 탄환이 나가는 구멍인 포구(砲口)가 밥그릇[碗] 모양으로 생겨서 붙은 이름이다. 완구는 사거리가 짧고 수평 발사가 불가능하지만, 구경(口徑)이 크고 무거운 돌을 발사하기 쉬워서 고려 말기에 최무선이 개발한 육화석포 이후에 조선후기까지 성이나 요새를 공격할 때 주로 쓰였다.

[연원 및 변천]
고려 말에 이르러 끊임없이 침입하는 왜구들을 막기 위해 화기를 제조하는 일이 사회적 급선무였다. 최무선의 건의로 1377년(고려 우왕 3)에 화약과 화기 제조를 담당할 전문기구인 화통도감이 설치되었다. 이 화통도감에서 육화석포를 비롯하여 18종의 각종 화기와 발사물이 제작되었다. 이때부터 고려의 화약 및 화기의 제작기술이 급속도로 발전하였다.

문헌자료가 간략하여 화포의 형태나 성능, 특성, 위력 등은 자세히 알 수 없으나 조선시대의 완구포와 비슷한 것으로 추측된다. 발사될 때 나오는 불꽃이 여섯 가지 색깔을 낸다 하여 ‘육화석포’라 불린 것 같다. 이러한 형태의 화포는 조선시대에 성이나 요새를 공격하는 공성용 화포로 지속적으로 사용되었다.

[형태 및 용도]
완구는 포구가 밥그릇 모양처럼 생겨 완구라고 한다. 완구는 포신 속의 빈 부분인 포강이 없고, 약실과 포탄을 담는 완구만 있기 때문에 사거리가 짧고 수평 발사가 불가능하다. 하지만 구경이 크고 무거운 돌을 쏘기에 적합하여 성이나 요새를 공격하는 공성용 화포로 사용되었다.

[참고문헌]
■ 『고려사(高麗史)』
■ 국사편찬위원회, 『나라를 지켜낸 우리 무기와 무예』, 두산동아, 2007.
■ 김기웅 외, 『한국무기발달사』, 국방군사연구소, 1994.
■ 민승기, 『조선의 무기와 갑옷』, 가람기획, 2004.
■ 박재광, 『화염 조선-전통 비밀 병기의 과학적 재발견』, 글항아리, 2009.
■ 이강칠, 『한국의 화포-지화식에서 화승식으로』, 동재, 2004.
■ 채연석, 『한국초기화기연구』, 일지사, 1981.

■ [집필자] 박재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