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왕조실록사전을 편찬하고 인터넷으로 서비스하여 국내외 다양한 분야의 연구자와 일반 독자들이 왕조실록에 쉽게 접근할 수 있도록 하고자 합니다. 이를 통해 학술 문화 환경 변화에 부응하고 인문정보의 대중화를 선도하여 문화 산업 분야에서 실록의 활용을 극대화하기 위한 기반을 조성하고자 합니다.
[정의]
유학(幼學)·처사(處士)·교생(校生)·생원(生員)·진사(進士) 등 유학을 공부하는 선비들이 입던 옷.
[내용]
조선시대에 발간된 문집류에서는 유복(儒服)이 대부분 유생복(儒生服)으로 표기되어 있다. 『조선왕조실록』에는 유생의 관복 개정과 왕세자의 청강 및 성균관에 입학할 때의 옷차림과 관련한 기록들이 많이 남아 있다.
1477년(성종 8)에는 유생들에게 길거리에서 갓[笠]을 쓰고 청금(靑衿)을 입도록 정하였으며[『성종실록』 8년 11월 1일], 1669년(현종 10)에는 유생의 관복을 분포단령(粉袍團領) 및 일상시의 유건(儒巾)으로 정하였다[『현종실록』 10년 2월 24일].
또한 1742년(영조 18) 기사를 보면, 왕세자는 유복 차림으로 성균관에서 청강을 하였고[『영조실록』 3년 3월 17일], 때로는 왕세자를 독려하는 차원에서 임금이 영화당(映花堂)에 나아가 왕세자에게 유복 차림으로 진현(進見)하라고 명하기도 하였다. 세자가 성균관에 입학할 때에는 유관(儒冠)에다 유복 차림으로 여러 유생들과 마주서서 세 번 읍을 하는데, 이는 군신(君臣)·부자(父子)·장유(長幼)에 관한 세 가지의 좋은 도리를 알게 하려는 의도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