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주조선왕조실록

조선왕조실록사전을 편찬하고 인터넷으로 서비스하여 국내외 다양한 분야의 연구자와 일반 독자들이 왕조실록에 쉽게 접근할 수 있도록 하고자 합니다. 이를 통해 학술 문화 환경 변화에 부응하고 인문정보의 대중화를 선도하여 문화 산업 분야에서 실록의 활용을 극대화하기 위한 기반을 조성하고자 합니다.
※자료문의 : 한국학중앙연구원 031-730-8765

우인(優人)

서지사항
항목명우인(優人)
용어구분전문주석
상위어무당(巫堂)
동의어광대(廣大), 배우(俳優), 악인(樂人), 재인(才人), 창우(唱優)
관련어나례(儺禮), 나희(儺戱), 우희(優戱)
분야문화
유형직역
자료문의한국학중앙연구원 한국학정보화실

※자료문의 연락처: 한국학중앙연구원 031-730-8765


[정의]
떠돌이 생활을 하면서 각종 재주 및 익살, 풍악, 노래 등을 하던 광대·재인(才人).

[개설]
일종의 광대라 할 수 있는 우인(優人)은 고대로부터 존재했으나 전문 직종으로 자리 잡게 된 시기는 고려시대 이후부터라고 할 수 있다. 특히 조선시대에 들어와 천인(賤人) 신분의 특수 예인(藝人) 집단인 광대·재인 등을 다르게 부르는 용어로 우인이 사용되었다.

[담당 직무]
조선시대의 연희(演戱) 문화는 대체로 기녀(妓女), 악공(樂工), 사당(社堂), 무당(巫堂)을 비롯하여 우인·창우(倡優)·광대·재인·화랑(花郎) 등의 배우에 의해 유지되었는데, 이들 가운데 배우가 그 주류를 이루었다.

조선시대 우인들은 일정한 곳에 머물며 농사를 짓고 사는 게 아니라 떠돌이 생활을 하였다. 이들은 주로 마을의 도당(都堂)굿이나 별신(別神)굿에 동원되거나 장시(場市)를 찾아다니며 각종 기예(技藝) 및 풍악, 노래 등의 공연을 하며 그 대가로 식량을 구걸하여 먹고살았다[『성종실록』 12년 12월 17일].

한편 이들은 궁중에서 벌어지는 나희(儺戱)에 출연하여 여러 물품을 하사받기도 하였으며[『중종실록』 18년 12월 28일], 과거 시험 장원급제자가 거리를 돌며 시험관, 선배, 친척 등을 찾아보는 유가(遊街) 행사를 할 때 여기에 동원되어 풍악을 울리고 가무를 하기도 하였다[『성종실록』 10년 1월 24일].

[참고문헌]
■ 『비변사등록(備邊司謄錄)』
■ 『승정원일기(承政院日記)』
■ 『오주연문장전산고(五洲衍文長箋散稿)』
■ 이두현, 『한국 무속과 연희』, 서울대학교출판부, 1996.
■ 장한기, 『한국 연극사』, 동국대학교출판부, 1986.

■ [집필자] 임학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