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왕조실록사전을 편찬하고 인터넷으로 서비스하여 국내외 다양한 분야의 연구자와 일반 독자들이 왕조실록에 쉽게 접근할 수 있도록 하고자 합니다. 이를 통해 학술 문화 환경 변화에 부응하고 인문정보의 대중화를 선도하여 문화 산업 분야에서 실록의 활용을 극대화하기 위한 기반을 조성하고자 합니다.
[내용]
『고려도경(高麗圖經)』에서 고려의 왕은 오사고모(烏紗高帽)와 착수포(窄袖袍)를 상복(常服)으로 착용한다고 하였다. 오사고모와 오사모는 큰 차이가 없는 것으로 보이는데, 1407년(태종 7) 8월에 서장관(書狀官) 정치(鄭穉)가 중국에서 돌아와 명나라 황후가 붕어한 것과 관련하여 중국 연경(燕京)에 있는 문무백관(文武百官)이 아침에 각각 소복(素服)·흑각대(黑角帶)·오사모를 갖추고 사선문(思善門) 밖에 다다라 예를 행했다고 보고하였다[『태종실록』 7년 8월 29일]. 이에 9월 1일 조선의 태종은 소복에 오사모와 흑각대를 갖춘 후, 백관을 거느리고 대행황후를 위해 거애례(擧哀禮)를 행하였다[『태종실록』 7년 9월 1일].
이것으로 미루어보아 조선초기 오사모는 중국에서는 백관이 착용하였던 것에 비해 조선에서는 왕이 착용했음을 알 수 있다. 1418년(태종 18) 8월에는 왕이 왕세자에게 충천각모(衝天角帽)를 씌어 주었다는 기록이 나타나는데[『태종실록』 18년 8월 10일], 이 충천각모는 각이 하늘을 찌르고 있는 형상으로 익선관과 같은 것으로 보이며, 이 시기에 오사모는 이미 문무백관이 착용한 것으로 여겨진다. 담제의(禫祭儀)와 사제의(賜祭儀)를 행할 때 문무백관은 각각 회색 단령(團領)·백의(白衣)·오사모·흑각대·백피화(白皮靴)를 착용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