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왕조실록사전을 편찬하고 인터넷으로 서비스하여 국내외 다양한 분야의 연구자와 일반 독자들이 왕조실록에 쉽게 접근할 수 있도록 하고자 합니다. 이를 통해 학술 문화 환경 변화에 부응하고 인문정보의 대중화를 선도하여 문화 산업 분야에서 실록의 활용을 극대화하기 위한 기반을 조성하고자 합니다.
[내용]
신기전은 1448년(세종 30)부터 역사에 등장했고 이후 활발히 사용되었다. 1474년에 편찬된 『국조오례의서례』「병기도설」에 도해되어 있는 신기전은 대신기전(大神機箭)·산화신기전(散火神機箭)·중신기전(中神機箭)·소신기전(小神機箭) 등이다. 대신기전은 길이가 5m 이상으로 신기전 중에서 가장 크며, 이것은 긴 대나무와 원통형 종이통으로 구성된다. 그중 긴 대나무는 로켓이 정면으로 안정되게 날아갈 수 있도록 하는 기능을 지녔으며 그 끝부분에는 조그만 날개가 달려 있다. 원통형 종이통의 앞부분에는 대신기전발화통(大神機箭發火筒)이 부착되어 있는데, 목표 지점에서 폭발하도록 설계되었다. 1448년(세종 30)에는 양계(兩界)에서 매 년 한 번씩, 그 나머지 여러 도에는 2년마다 한 번씩 연습하는 것을 규정하기도 했다. 또한 세종대에는 신기전 90개가 제조되어 의주성에서 사용된 기록이 있다. 당시 대신기전은 주로 압록강 하구 의주성에서 강 건너에 있는 오랑캐들을 공격하기 위해 사용된 것으로 보이며, 사정거리는 1.5~2킬로미터로 추측된다. 압록강 하구에서 물이 흐르는 너비가 그 정도이기 때문이다.
산화신기전은 대신기전과 유사하였다. 다만 종이통 폭탄인 대신기전발화통을 사용하지 않고 약통의 윗부분에 빈 곳을 만들고 그 속에 지화(地火)와 발화(發火)를 묶어 넣어서 적군을 혼란에 빠뜨리는 데 사용하였다. 대신기전과 산화신기전의 사정거리는 1,000m 이상이다. 중신기전은 길이가 약 1.4m로 대나무로 제작하되 맨 앞에는 화살촉을 달았고, 그 뒤에 중신기전을 추진시키는 화약이 들어 있는 약통이 달려 있다. 맨 끝은 새 깃으로 만든 날개를 달고 있다. 약통의 윗부분에는 소발화통이라는 소형 폭탄이 장치돼 있어, 추진화약이 다 연소된 후에는 내부 심지를 통해 발화통의 화약에 점화되어 폭발하도록 되어 있다. 사정거리에 대한 자세한 기록은 없지만, 시험 결과 200~250미터를 날아갈 수 있었다. 소신기전은 길이가 약 1m 내외로 대나무를 안정 막대로 사용하고 맨 앞에는 중신기전과 같이 화살촉을 달았으며, 촉에서 조금 뒤로 떨어진 부분에 약통을 달았다. 맨 뒷부분에는 새털로 만든 안정 깃을 달았으나, 대신기전·중신기전과는 달리 약통만 있고 발화통은 없기 때문에 폭발하지는 않고 맨 앞의 화살촉으로 적을 살상한다. 이 신기전의 사정거리는 100~150미터다.
한편 신기전에 관한 문헌 기록인 「병기도설」을 살펴보면 길이를 표시할 때 아주 작은 단위인 리(釐)를 사용하고 있는데, 이것은 당시 이러한 미세 단위까지 사용하여 신기전을 설계했고, 나아가 당시 조선의 과학기술 수준이 얼마나 높았는가를 가늠하게 해준다. 이러한 신기전 사용에 대해서는 문헌에 기재되어 있지 않은 것이 매우 아쉬운 부분이지만 그것을 추정해보면 다음과 같다.
주화와 신기전의 발사 장치는 대포형 화기의 발사기와는 달리 매우 단순한 구조를 갖고 있다. 이는 발사 장치에 의해 추진되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로켓형 화기의 경우 발사 장치는 발사 방향과 각도를 정해주는 역할만 할 뿐 추진은 주화와 신기전 자체 내에 부착된 추진제통을 이용하기 때문이다. 자체 추진력을 지니고 있어 발사 초기의 안정성만 유지해줄 수 있다면 발사대의 종류는 그렇게 중요한 것이 아니었다. 따라서 주화나 신기전의 발사 장치는 안정 막대만 꽂거나 뉘여 놓을 수 있는 것, 즉 빈 대나무통이나 낚싯대를 걸어놓는 X, Y형 지지대 같은 받침대를 사용했을 것으로 추정된다[『세종실록』 23년 10월 1일].
신기전은 1451년 문종이 화차를 창안하여 제작하면서 화차의 신기전기(神機箭機)에서 대량으로 발사되기 시작했다. 즉 한 번에 100발을 발사할 수 있게 되므로 그 위력은 실로 가공할 만한 것이었다. 특히 신기전 앞쪽에는 발화통이라는 폭탄이 장착되어 있는데, 이 통 속의 화약에는 전체 화약 무게의 27퍼센트에 달하는 쇳가루가 들어 있어, 발화통이 터질 때 뜨거운 파편 구실을 한다. 이때 주위에 있는 적이나 말의 몸에 뜨거운 쇳가루가 박힐 것이고 말 위에 타고 있던 적군은 부상당하거나 말에서 떨어질 것이니 효과가 무척 컸을 법하다. 따라서 각 군영에 많은 양을 배치해 사용하였고, 실제 주요 전투에서도 결정적인 역할을 하여 조선군이 승리하는 데 큰 원동력이 되었던 것이다. 현재 신기전의 실제 유물은 어느 곳에도 전해지는 것이 없다. 다만 육군박물관, 전쟁기념관을 비롯하여 몇몇 박물관에 『세종실록』과 『국조오례의서례』「병기도설」의 내용을 바탕으로 복원한 모형이 전시되어 있다. 그리고 전통 무기 행사 때 간간이 이 신기전 발사를 시연하고 있다. 이러한 신기전은 조선시대 국방과학 기술의 총 집결체일 뿐만 아니라 우리의 국방과학 및 무기 체계의 역사를 이해하고 발전시킬 수 있는 소중한 문화유산이라고 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