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왕조실록사전을 편찬하고 인터넷으로 서비스하여 국내외 다양한 분야의 연구자와 일반 독자들이 왕조실록에 쉽게 접근할 수 있도록 하고자 합니다. 이를 통해 학술 문화 환경 변화에 부응하고 인문정보의 대중화를 선도하여 문화 산업 분야에서 실록의 활용을 극대화하기 위한 기반을 조성하고자 합니다.
[개설]
인종은 중종의 제1 계비인 장경왕후(章敬王后) 윤씨(尹氏)의 소생으로 1520년(중종 15)에 세자로 책봉되었다. 장경왕후는 인종을 낳은 뒤 1515년에 죽었다. 중종의 제2 계비인 문정왕후(文定王后) 윤씨는 1534년에 훗날 명종으로 즉위하는 경원대군(慶原大君)을 낳았다. 이때 세자를 저주하는 일들이 계속 발생하면서 김안로는 동궁을 보호한다는 ‘보익동궁(輔翼東宮)’을 명분으로 득세하였다. 그러다가 결국 문정왕후 폐출 음모와 관련해 1537년에 죽음을 당하였다. 이후 왕위 승계 문제와 관련해 동궁을 비호하는 동궁의 외숙 윤임 측과 경원대군-문정왕후-윤원로·윤원형 측 사이에 대립과 갈등이 시작되었다. 윤임 일파를 대윤(大尹), 윤원형 일파를 소윤이라고 속칭하였고, 신료들도 서로 갈리게 되었다[『중종실록』 38년 2월 24일]. 이로써 왕위 승계 과정에 외척이 본격적으로 간여하는 새로운 정치 상황이 전개되었다.
[변천]
1544년에 중종이 죽고 인종이 즉위하자 외척 윤임을 중심으로 하는 대윤 일파가 득세하였다. 인종은 사사된 조광조의 관작을 복구하는 등 사림을 대거 등용하였다. 그러나 재위 8개월 만에 인종이 죽고 12세의 명종이 1545년(명종 즉위)에 즉위하게 되자 상황은 일거에 바뀌게 되었다. 어린 명종을 대신해 문정왕후가 수렴청정을 하면서 윤원형을 비롯한 소윤 일파가 실권을 장악하게 되었다[『명종실록』 즉위년 7월 7일]. 결국 을사사화의 구체적인 죄목이 불명확한 가운데 소윤은 이를 통해 대윤 일파를 제거하였다. 윤원형을 중심으로 한 소윤 일파는 1565년에 문정왕후가 죽을 때까지 권신과 척신의 전권(專權)을 통해 비리를 자행하였다.
[참고문헌]
■ 김돈, 『조선 전기 군신 권력 관계 연구』, 서울대학교출판부, 1997.
■ 김돈, 『조선 중기 정치사 연구』, 국학자료원, 2009.
■ 김범, 『사화와 반정의 시대: 성종·연산군·중종과 그 신하들』, 역사비평사, 2007.
■ 김우기, 『조선 중기 척신 정치 연구』, 집문당, 2001.
■ 한춘순, 『명종대 훈척 정치 연구』, 혜안, 200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