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왕조실록사전을 편찬하고 인터넷으로 서비스하여 국내외 다양한 분야의 연구자와 일반 독자들이 왕조실록에 쉽게 접근할 수 있도록 하고자 합니다. 이를 통해 학술 문화 환경 변화에 부응하고 인문정보의 대중화를 선도하여 문화 산업 분야에서 실록의 활용을 극대화하기 위한 기반을 조성하고자 합니다.
[정의]
시신을 향탕물로 깨끗이 씻기고 수의를 입히고, 이불[衣衾]과 교포(絞布)로 싸는 의식을 이르는 말.
[개설]
습(襲)과 염(斂)은 절차가 중복되는 것 같으나 습은 시신을 정결하게 씻기고 깨끗한 옷, 즉 수의로 갈아입히는 절차이고, 소렴(小斂)은 저 세상으로 가는 모든 행장을 끝내고 이불과 교포로 싸고 묶는다.
염하고 빈하는 날짜는 죽은 사람의 지위에 따라 다르다. 왕과 왕비의 경우 죽은 다음 날 습하고 3일째 되는 날 소렴하고, 5일 만에 날 대렴하며, 대부(大夫)와 사서인(士庶人)은 죽은 날 습하고 다음 날 소렴하며 3일 만에 대렴한다. 경우에 따라서 날씨가 더워 시신이 부패될 염려가 있을 때에는 습하고 이어 소렴을 하기도 한다.
고제(古制)에 소렴의(小斂衣)는 천자로부터 사에 이르기까지 모두 19벌이다. 소렴의를 신분에 관계없이 모두 19벌을 사용하도록 한 것은 『예기(禮記)』 「상대기(喪大記)」의 ‘십유구칭(十有九稱)’에서 비롯된 것이다. 19벌이라는 것은 천지의 마지막 수를 본뜬 것이다. 천지의 첫 숫자는 천이 1이요, 지가 2이고, 마지막 숫자는 천이 9요 지가 10이다. 즉 천수(天數)는 9에서 끝나고 지수(地數)는 10에서 끝나 ‘십유구(十有九)’는 천지의 끝이 되기 때문에, 소렴의에 대해서는 상하존비 구별 없이 모두 천지의 끝수를 써서 19벌을 쓰게 한 것이다. 사람은 천지 사이에서 마치기 때문에 마지막 숫자를 취한 것이다.
[내용 및 절차]
국상의 경우 소렴은 죽은 지 3일째 되는 날 한다. 왕의 시신이 안치된 휘장 밖에 소렴상을 설치하고 욕석(褥席)과 베개를 깔고 그 위에 교금(絞衾)을 펴는데, 가로로 묶는 것 3개는 아래쪽에 두고, 세로로 묶는 것 1개는 위에다 둔다. 교금은 모두 한 폭을 가지고 양끝을 세 갈래로 가른 뒤 그 길이를 3등분하여 가운데 1푼을 남겨둔다. 교금은 소렴 때 시신을 마지막으로 옷을 묶어 매는 데 쓰는 속대의 일종으로 교포(絞布), 효금(絞衾)라고도 한다.
교금은 흰 명주를 쓰는데, 가로가 세 폭이고, 세로가 한 폭이다. 크기는 가로 폭이 몸을 둘러서 서로 맬 수 있는 정도로 하고, 세로 폭은 머리에서 발끝까지 덮은 뒤 몸 가운데서 묶을 수 있을 정도로 한다.
염을 할 준비를 마치면, 내시(內侍)가 상을 마주 들고 들어와 왕의 시신을 소렴상 위에 옮겨 염을 시작한다. 염을 할 때는 왕세자 이하 대군, 상궁 등 모두 휘장 밖으로 나간다. 먼저 베개를 빼고 첩의(疊衣)를 펴서 머리 밑에 깔고 그대로 양쪽 끝을 말아서 양 어깨 쪽의 빈 곳을 채우고, 또 옷을 말아 양쪽 정강이 사이에 끼워서 모가 반듯하게 한 뒤 남은 옷으로 덮어 가리는데, 옷깃을 왼쪽으로 가게 여미고 고름은 매지 않는다. 그리고 이불을 덮되 교포로 묶어 매지 않고 이불로 덮고 대렴 때까지 기다린다. 왕세자 이하가 들어가 왕의 시신이 있는 상 동쪽에 가서 꿇어앉아 부복하고 곡을 하며 극진히 애도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