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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의]
외국에 간 사신이 돌아올 때 다른 사행원(使行員)보다 먼저 귀국하여 사행의 성과나 견문한 사건을 왕에게 직접 보고하는 임무를 가진 역관.
[개설]
역관은 사역원(司譯院)에 소속되어 의주·동래 등지에서 통역에 종사하던 이속(吏屬)이다. 이와는 달리 역과(譯科)에 합격하여 외국에 사행원의 일원으로 정식 통역관이 된 관원을 통사(通事)라 하였다. 통사는 상통사·차상통사·소통사 등이 있었으며, 예외적으로 국내에서 활동하던 향통사(鄕通事), 어전통사(御前通事) 등도 있었다. 외국에 간 같은 사절 일행이 돌아오기 전에 먼저 귀국한 통사를 선래통사(先來通事)라 하며, 약칭으로 선래(先來)라고도 한다.
[담당 직무]
사행에서 통사의 주요 임무는 물론 통역이었지만, 또한 통사는 중국 체재 시 각종 문서 전달과 향후 일정 협의 등의 외교적 실무를 수행하였다. 또한 통사는 중국의 실정을 파악하여 삼사(三使)에게 전달하고, 사행 중 다양한 정보를 탐지하여, 수본을 작성해서 귀환한 뒤 승정원에 제출하게 되어있었다.
이러한 역할을 가진 통사 중에 선래통사는 다른 사행원보다 먼저 귀국하여 사행의 성과나 견문한 사건을 왕에게 직접 보고하는 것이 관행이었다. 한편 이들은 오고 가는 사이에 위험에 노출될 수가 있었다. 이때 자칫 그들이 가지고 오는 외교 정보가 누설될 수가 있었다. 이에 1525년(중종 20)에는 선래통사의 지체를 우려하면서 앞으로는 북경으로 가는 사신의 자제는 무예의 능력을 갖춘 자를 보내도록 하고, 만약을 대비해 여진통사와 한학통사를 추가로 보내도록 하였다[『중종실록』20년 10월 14일].
[의의]
통사는 조선시대 사행원의 일원이다. 사행 중 제반 업무의 실질적 책임자로서 방물·세폐 등 각종 물화를 운송·관리하며 세부 업무 종사자 등으로 폭넓게 구성되어, 사행할 때 중추적 역할을 하였다. 특히 선래통사는 해당 사행의 성과나 사행로에서 견문한 일 등을 다른 사행원보다 먼저 귀국하여 알려주는 첨병의 역할을 하였다고 하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