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왕조실록사전을 편찬하고 인터넷으로 서비스하여 국내외 다양한 분야의 연구자와 일반 독자들이 왕조실록에 쉽게 접근할 수 있도록 하고자 합니다. 이를 통해 학술 문화 환경 변화에 부응하고 인문정보의 대중화를 선도하여 문화 산업 분야에서 실록의 활용을 극대화하기 위한 기반을 조성하고자 합니다.
[내용]
서대(犀帶)는 1품의 벼슬아치가 관복을 입고 허리에 두르는 띠였으나, 그 제도가 문란해지자 1438년(세종 20) 큰 고을 향리들의 서대 착용을 금지하였다[『세종실록』 20년 4월 1일]. 1481년(성종 12)에는 중국 황제가 성절사(聖節使) 한치형(韓致亨)에게 서대를 하사하였는데, 서대를 받고 돌아왔으니 일행의 영광이라고 위로한 것으로 보아 서대는 존귀함의 상징이었음을 알 수 있다[『성종실록』 12년 12월 22일]. 그런데 1482년(성종 13)에는 경연을 파하고 이파(李坡)에게 서대를 하사한 것을 비롯하여[『성종실록』 13년 11월 24일] 1488년(성종 19) 좌참찬(左參贊) 신승선(愼承善)에게도 하사하여[『성종실록』 19년 2월 8일] 서대를 하는 사람이 많아지자, 1494년(성종 25)에는 사간원(司諫院) 대사간(大司諫) 윤민(尹愍)과 사헌부(司憲府) 집의(執義) 이균(李均) 등이 서대 하사를 철회해 달라는 상소를 올렸다[『성종실록』 25년 3월 1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