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왕조실록사전을 편찬하고 인터넷으로 서비스하여 국내외 다양한 분야의 연구자와 일반 독자들이 왕조실록에 쉽게 접근할 수 있도록 하고자 합니다. 이를 통해 학술 문화 환경 변화에 부응하고 인문정보의 대중화를 선도하여 문화 산업 분야에서 실록의 활용을 극대화하기 위한 기반을 조성하고자 합니다.
[내용]
임진왜란 중 원병으로 조선에 들어온 명나라 남방 출신 병사인 남병(南兵)들은 평양성 전투에서 다수의 화포를 운용했다. 이와 함께 다양한 근접전 병기를 가진 병사들이 일본군을 근접전을 통해 격파하는 것이 조선에 큰 인상을 남겼다. 이들이 구사한 전술이 척계광이 개발한 이른바 절강병법(浙江兵法)이라는 것을 파악한 조선은 이 전술 체계와 군사제도를 도입하고 이를 새로 창설한 군영인 훈련도감(訓鍊都監)을 통해 보급하였다. 훈련도감은 조총을 다루는 군사인 포수(砲手)와 함께 창검을 다루는 살수(殺手), 그리고 활을 쏘는 사수(射手), 즉 삼수병(三手兵) 체제로 편성하였다. 이러한 삼수병 체제는 지방군인 속오군(束伍軍)에도 적용되었다. 17세기 중반 이후 조선의 군사체제에서 살수와 사수의 비중은 점차 줄어들어 대부분의 군영에서 포수를 중심으로 변화하였다. 훈련도감의 경우에는 17세기 후반에는 포수가 다수인 20초(哨)를 편성하였고 사수는 없어졌다. 그리고 살수 6초가 이후에도 명맥을 유지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