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주조선왕조실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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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합(分閤)

서지사항
항목명분합(分閤)
용어구분전문주석
동의어분합(分合)
관련어남루분합(南樓分閤), 남북퇴분합(南北退分閤), 대청분합(大廳分閤), 북퇴분합(北退分閤), 살대, 서퇴분합(西退分閤)
분야문화
유형개념용어
자료문의한국학중앙연구원 한국학정보화실


[정의]
두 짝 이상으로 이루어진 여닫이 창호(窓戶) 중에서 살대로 구성된 창호의 총칭.

[개설]
한국 건축의 창호는 매우 다양한데, 그중에서 가장 일반적으로 사용되는 창호가 분합(分閤)이다. 분합은 문울거미와 살대, 창호지로 구성되며 일반적으로는 두 짝 이상이 여닫이 형식으로 개폐되는 방식을 지니고 있다. 창호지를 사용한 창호는 일반적으로 방과 대청 사이, 방과 외부, 또는 대청과 외부 사이에 위치한다. 분합의 한자 표기는 17세기 초에는 주로 분합(分合)으로 표기되었으나 이후에는 분합(分閤)으로 표기하고 있다.

분합은 크기에 따라 대분합과 중분합, 소분합으로 구분되기도 하였으며, 『경모궁개건도감의궤』에서처럼 위치에 따라 남루분합(南樓分閤), 대청분합(大廳分閤), 서퇴분합(西退分閤), 남북퇴분합(南北退分閤), 북퇴분합(北退分閤) 등으로 구분되기도 하였다. 또한 살대의 모양은 건물의 기능과 격식에 따라 다양하게 만들어진다.

이렇게 다양하게 만들어지는 살대의 모양에 따라 분합은 띠살 즉, 세살로 이루어진 세전분합(細箭分閤)과 정사살로 이루어진 만살분합(滿箭分閤), 만살로 만든 것 중에서 간격을 촘촘히 만든 세만살분합, ‘만(卍)’ 자로 이루어진 만자분합과 만자창판분합, 꽃살무늬를 베푼 꽃살분합 등으로 구분된다. 또한 창호 아래 부분에 청판을 설치했는지 유무에 따라 청판분합과 단분합으로 구분하기도 한다. 예를 들어 세살분합 중에 아래에 청판을 설치한 경우에는 세살청판분합, 청판이 없는 경우에는 세살단분합으로 구분한다.

분합은 두 짝 이상으로 만드는데, 문짝의 수에 따라 세 짝으로 된 삼분합, 네 짝으로 된 사분합, 여섯 짝으로 된 육분합, 여덟 짝으로 된 팔분합 등으로 구분하기도 한다. 이렇게 세 짝 이상으로 된 분합은 들어열개를 하는 경우가 많다.

[내용 및 특징]
분합을 세분하는 방법은 시대에 따라 약간의 차이가 있다. 그러나 일반적으로 분합은 다음과 같은 몇 가지 기준으로 구분할 수 있다. 우선 문짝의 수에 따라 삼분합, 사분합, 육분합, 팔분합 등으로 구분한다. 문짝의 수는 기둥 사이의 간격, 즉 간 사이[柱間]에 따라 결정된다. 다음으로 문짝 아래 청판을 설치한 궁창부의 유무에 따라 궁창부가 있는 청판분합과 궁창부가 없는 단분합으로 구분된다. 또한 분합문은 건물의 용도와 격식, 집주인의 취향에 따라 살대의 모양을 다양하게 만드는데, 이에 따라 분합을 세살분합, 만살분합, 세만살부합, 꽃살분합 등으로 구분하기도 한다.

여러 짝으로 이루어진 분합은 평소에는 출입을 위한 문으로 사용된다. 그러나 필요에 따라서는 문짝을 포갠 다음 위로 젖혀 올려서 창호를 매달기 위해 설치한 철물인 등자쇠에 걸쳐놓기도 한다. 이처럼 문짝을 포갠 후 위로 젖혀 올리는 개폐 방식을 들어열개라 한다. 분합을 들어열개 하면 문짝으로 막혀있던 기둥 사이가 완전히 개방된다. 즉 들어열개를 통하여 두 공간이 쉽게 하나의 공간으로 통합되기도 하며, 두 개의 공간으로 나누어지기도 한다. 분합이 지닌 이러한 특성으로 인하여 한국 건축은 두 개의 공간이 쉽게 통합되거나 분리될 수 있는 가변성을 지니고 있다.

[변천]
살대로 구성된 분합은 창호지를 붙이게 되므로 분합의 발생은 창호지의 사용과 밀접한 관계가 있다. 현재까지 알려진 바에 의하면 고려시대의 건축에서는 창호지의 사용이 보편적이지 못하였던 것으로 보인다. 예를 들어 건물이 묘사되어 있는 고려시대의 불화 중에는 살대와 창호지를 사용한 건물을 볼 수 없다. 따라서 고려시대에는 여러 짝으로 구성된 여닫이 형식의 창호는 존재했을 가능성이 있으나 살대를 설치한 후 창호지를 바른 창호는 아직 발생하지 않았을 가능성이 있다. 따라서 조선시대 후기의 건축에서 볼 수 있는 분합은 조선시대에 들어와 형성된 것이라 할 수 있는데, 그 시점이 언제쯤인지는 정확히 알 수 없다.

[의의]
분합은 여러 짝의 창호가 포개지는 여닫이 창호로 들어열개를 통하여 공간 사이에 가변성을 지닌 한국 건축의 특성을 만들어내는 중요한 요소가 된다.

[참고문헌]
■ 『창덕궁수리도감의궤(昌德宮修理都監儀軌)』
■ 『의소묘영건청의궤(懿昭廟營建廳儀軌)』
■ 『화성성역의궤(華城城役儀軌)』
■ 『경빈예장소등록(慶嬪禮葬所謄錄)』
■ 경기문화재단 편집부, 『화성성역의궤 건축용어집』, 경기문화재단, 2007.
■ 신기철ㆍ신용철, 『새우리말 큰사전』, 삼성출판사, 1991.
■ 장기인, 『한국건축사전』, 보성문화사, 1991.
■ 주남철, 『한국건축의장』, 일지사, 1985.

■ [집필자] 김도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