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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용]
전근대사회의 수취 체계에서 조세(租稅)·공부(貢賦)와 더불어 수취제도의 큰 몫을 차지한 것은 부역(賦役)이었다. 부역은 전근대사회에서 국가권력이 민의 노동력을 무상으로 강제 징발하는 수취제도였다. 부역은 신역(身役)과 요역(徭役)으로 나누어 볼 수 있다. 신역은 특정 인신에 대하여 정기·정량적인 부역노동의 징발을 규정한 것으로 가장 보편적인 것은 군인으로 복무하는 군역을 들 수 있다. 향리의 향역(鄕役), 장인의 장역(匠役,) 공천의 천역(賤役) 등이 모두 신역의 범주에 들었다. 이에 비해서 요역은 특정 인신에 부과되지 않고 가호(家戶) 단위로 부과하였으며, 역의 부과에서도 부정기·부정량적인 특성을 지녔다.
16세기 이후 군역제에서는 대립(代立)·방군수포(放軍收布)·포납화(布納化)의 추세가 대두하였다. 17세기 이후 대동법·균역법 등이 시행되면서, 부역노동의 물납세화 및 조세 부담의 균등화 추세가 촉진되었다. 신분제적 지배 질서, 지역별 독자성, 현물과 노동력의 직접 징발 등을 특징으로 하던 중세적 부세제도의 운영 원리가 흔들리기 시작하였다. 18·19세기 부세제도에서 부역의 물납세화, 조세의 토지 집중 등의 추세는 국가권력의 민에 대한 낡은 인신적 지배 관계를 부인하는 방향으로 나아갔으며, 이는 중세적 부세 수취 체계의 붕괴를 의미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