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왕조실록사전을 편찬하고 인터넷으로 서비스하여 국내외 다양한 분야의 연구자와 일반 독자들이 왕조실록에 쉽게 접근할 수 있도록 하고자 합니다. 이를 통해 학술 문화 환경 변화에 부응하고 인문정보의 대중화를 선도하여 문화 산업 분야에서 실록의 활용을 극대화하기 위한 기반을 조성하고자 합니다.
[개설]
『조선왕조실록』에 따르면, 봉전은 선조 이후 자주 등장하였다. 왕세자를 결정하는 건저, 왕위 계승을 결정한 사위, 비빈(妃嬪)을 책봉하는 책비, 왕위에 오르지 못하고 세상을 떠난 왕족에게 군호(君號) 수여를 하는 추숭의 일 등에서 중국 황제의 결재를 받았던 것이다. 이 밖에 새로운 왕이 등극할 때 왕으로 인정하고 관작을 수여하는 봉작(封爵)과 사의(賜衣)라는 봉전도 있었다. 이런 사례들은 얼핏 의례에 속하는 문제인 듯하지만, 당시 조선과 중국(명・청) 두 나라의 전통적 외교 관계의 특징을 여실히 보여 주었다. 봉전을 통한 양국의 의례적 관계는 복잡한 형식으로 조선후기까지 이어졌다.
[연원 및 변천]
조선과 중국 사이에 건저·사위·책비 등의 봉전 행위는 복잡한 절차에 따라 전개되었다. 조선은 중국 황제의 봉전을 얻어 내기 위하여 주청사절단을 성대한 규모로 구성하였는데, 여기에는 방대한 양의 공물이 뒤따랐다.
[절차 및 내용]
조선은 왕세자 결정 등의 봉전 의례를 통과하기 위하여 관련 내용을 보고하고 허락을 구하는 주청사(奏請使)를 파견하였다. 사절단은 정1품 정사(正使), 종2품 부사(副使), 정4품 서장관(書狀官) 등으로 구성되었다. 사절단은 방대한 규모의 공물을 바쳤으며, 정사에는 비중 있는 정치인이나 왕족을 임명할 정도로 봉전으로 맺어지는 양국의 관계에 정성을 쏟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