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왕조실록사전을 편찬하고 인터넷으로 서비스하여 국내외 다양한 분야의 연구자와 일반 독자들이 왕조실록에 쉽게 접근할 수 있도록 하고자 합니다. 이를 통해 학술 문화 환경 변화에 부응하고 인문정보의 대중화를 선도하여 문화 산업 분야에서 실록의 활용을 극대화하기 위한 기반을 조성하고자 합니다.
[개설]
『조선왕조실록』에는 보가 총 세 차례 등장하는데, 모두 길이에 대한 논의가 진행되면서 나타난다. 보는 건축물에서 가장 큰 응력을 담당하는 구조물이기 때문에 매우 중요한 건축 부재이다. 장방형의 평면에서 길이가 짧은 방향으로 보가 놓이기 때문에 대부분의 건물에서 정면과 배면에 위치한 기둥 상부에 보가 놓이게 된다. 보 상부에는 또 다른 중요 건축 부재인 도리가 놓여 상부의 서까래를 지지한다. 이런 연유로 보와 도리는 서로 직교하는 방향으로 놓이게 된다. 건축물에서 가장 중요한 부재가 보와 도리인 관계로 ‘동량(棟樑)’이라는 용어를 사용하여 국가의 뛰어난 인재를 지칭하기도 한다.
역사적으로 보를 지칭하는 용어로는 복(栿)과 더불어 양(樑) 또는 양(粱)이 사용되었다. 『조선왕조실록』에서는 복이 사용된 사례가 드물지만 건축 관련 의궤에서는 많은 내용을 접할 수 있다. 의궤에 따르면 복이라는 부재는 17세기에 한정하여 사용된 경향을 발견할 수 있다. 17세기에 발간된 의궤에서는 보를 지칭하는 용어로 복을 사용했으며, 보와 양이라는 용어를 사용한 예는 드물다.
한편 18세기에 발간된 의궤에서는 복 대신에 보라는 용어를 사용하며, 19세기 이후에 이르러 양이라는 용어가 사용되었다. 모두 보를 가리키는 용어로, 뜻은 같으나 시대에 따라 용어의 사용이 달라지는 모습을 극명히 보여주는 사례라 할 수 있다. 복이 사용된 대표적인 의궤로는 장서각에 소장된 『창덕궁수리도감의궤』를 들 수 있다.
보는 건축 평면에서 길이가 짧은 방향으로 결구되고, 길이가 긴 방향으로는 도리가 결구된다. 길이가 긴 부재보다 짧은 부재가 건축 구조물로서 훨씬 적합하기 때문에 짧은 방향으로 보를 결구해 건물을 구성하는 것이다. 만약 보를 평면에서 긴 방향으로 사용했을 때는 보의 길이만 길어지는 것이 아니라 훨씬 강한 하중에 대응해야 하기 때문에 보의 단면적 역시 커져야만 한다. 일반적인 대들보 부재도 구하기가 쉽지 않은 상황에서 이것은 매우 비합리적인 모습일 것이다.
보의 단면 형상은 시대에 따라 달라진 모습을 확인할 수 있다. 고려시대 주심포 건축물에서는 보의 단면이 항아리 모양을 닮은, 소위 항아리형 보가 사용되었다. 보의 단면 형태를 위쪽은 넓고 아래쪽은 좁게 만들어 모양이 항아리와 닮은 형태였는데 건축물의 미적인 면을 강조한 결과이다. 조선시대에 들어서면 항아리형 보는 찾아보기 어렵다. 대신 목재의 단면적을 최대한 활용하는 방향으로 변화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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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의 건물에는 건물의 규모에 따라 여러 종류의 보가 같이 사용되는데, 대들보[大樑], 종보[宗樑], 중보[中樑], 툇보[退樑], 충량(衝樑), 맞보[合樑] 등이 있다. 가구 형식이 가장 간단한 삼량(三樑) 건축물의 경우는 보가 하나만 사용되기 때문에 따로 접두어를 붙이지 않고 양이나 보라고 칭하는 것이 일반적이며, 평량(平樑)이라고 칭한 경우도 있다. 오량(五樑) 건축물에서는 내부에 고주(高柱)를 몇 개 사용했는지에 따라 사용하는 보의 양상도 달라진다. 고주를 사용하지 않은 오량 건축의 경우는 대들보와 종보만으로 건물의 가구가 완성된다.
고주를 하나 사용한 경우는 대들보와 종보에 더하여 툇보가 사용되며, 고주를 두 개 사용한 경우는 대들보와 두 개의 툇보로 건축물의 가구를 완성한다. 건축물에 중보가 사용된 경우는 칠량 이상의 건축물에서 나타나게 되는데, 중량을 사용한 건축물은 그 수가 많지 않다. 충량이라는 보는 지붕의 형태와 밀접한 관련이 있다. 지붕의 형태가 팔작지붕 혹은 우진각 지붕일 때 사용하는 보로서, 다른 보가 평면에서 길이가 짧은 방향으로 사용되는 반면 충량은 일반 보들과 직각으로 사용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