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왕조실록사전을 편찬하고 인터넷으로 서비스하여 국내외 다양한 분야의 연구자와 일반 독자들이 왕조실록에 쉽게 접근할 수 있도록 하고자 합니다. 이를 통해 학술 문화 환경 변화에 부응하고 인문정보의 대중화를 선도하여 문화 산업 분야에서 실록의 활용을 극대화하기 위한 기반을 조성하고자 합니다.
[개설]
경복궁 근정전을 비롯한 궁궐 정전이나 종묘 등의 월대(月臺)와 마당은 전체에 걸쳐 얇고 널찍한 돌을 깔아놓는다. 또한 마당 전체에 깔지 못할 경우에는 통로 부분에 한정하여 얇고 널찍한 돌을 깐다. 이렇듯 바닥에 깔기 위해 만든 얇고 널찍한 돌을 박석(薄石)이라 부른다. 박석은 대부분 막돌을 거칠게 약간만 다듬어 사용하는 것이 일반적이지만 바닥에 까는 전돌인 방전(方塼)처럼 네모진 형태에 위를 평평하게 다듬어 사용하기도 한다.
[연원 및 변천]
언제부터 박석을 바닥에 깔았는지는 정확히 알 수 없다. 그러나 춘천 개평리, 강화 삼거리, 평양 청오리 등 몇몇 신석기시대 유적에서는 일정한 범위에 걸쳐 돌을 깔아놓은 경우가 있다. 이렇듯 일정한 범위에 돌을 깔아놓은 부석(敷石) 유적은 일부 집터로 추정되고 있으나 그 용도는 정확히 알 수 없다. 부석 유적이 집터로 사용된 것이라면 마당을 비롯한 외부 공간에 깐 박석과는 구분할 필요가 있다. 그러나 이 유적은 이미 신석기시대에 바닥에 돌을 깔아놓고자 하는 의도가 발생하였던 것으로 볼 수 있다.
이후 삼국시대에는 마당을 비롯한 외부 공간 전체나 일부에 박석을 깔아놓은 흔적이 발굴되었다. 수산리 벽화고분을 비롯한 안악2호분 등의 벽화에 보도로 보이는 포장된 길이 그려져 있는 것이 그 예에 속한다. 또한 경주에서는 도로의 중앙에 박석을 깔아 포장한 길이 확인되기도 하였다. 이처럼 마당 전체에 박석을 깔거나 그 일부에 보도로서 박석을 깐 시설은 삼국시대부터 조선시대까지 이어졌던 전통이었다고 할 수 있다.
[형태]
박석은 바닥에 깔기 쉽게 사방 30~45㎝ 정도의 네모진 모습으로 얇고 널찍하게 만든 돌이다. 주로 화강석 계열의 돌을 이용하여 만들며, 표면을 평평하게 잘 가공하기도 하지만 자연석을 거칠게 가공하여 네모진 형상에 가까우면서도 부정형을 이루도록 만든 것이 대부분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