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왕조실록사전을 편찬하고 인터넷으로 서비스하여 국내외 다양한 분야의 연구자와 일반 독자들이 왕조실록에 쉽게 접근할 수 있도록 하고자 합니다. 이를 통해 학술 문화 환경 변화에 부응하고 인문정보의 대중화를 선도하여 문화 산업 분야에서 실록의 활용을 극대화하기 위한 기반을 조성하고자 합니다.
[내용]
문안사는 주로 흠문기거사(欽問起居使) 혹은 선위사(宣慰使) 등으로 불리었다. 조선초기에는 명 황제가 병이 들거나 원지(遠地)를 순행할 때라든지, 황제가 원정할 때 흠문기거사가 파견되었다. 또한 중국 사신이 조선에 올 때에 중간 지점 몇 곳에 이들의 사행을 위문하기 위해 선위사가 파견되었다. 청(淸)나라가 건국된 이후에는 동지사(冬至使)로 통일, 여러 가지 명목의 문안사가 줄어들었다. 다만 청나라 황제가 자기 선조의 분묘가 있던 성경(盛京), 즉 봉천(奉天)에 행행(行幸)할 경우에는 흠문기거사가 파견되었는데, 이곳은 조선과 가까운 곳이었기 때문이다.
문안사는 정례사행이 아닌 임시사행으로, 정사를 1품관으로 하는 일품행(一品行)으로, 서장관만 두고 부사(副使)가 없는 단사(單使)였다. 다만 다른 사절과 겸행일 때에는 부사가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