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왕조실록사전을 편찬하고 인터넷으로 서비스하여 국내외 다양한 분야의 연구자와 일반 독자들이 왕조실록에 쉽게 접근할 수 있도록 하고자 합니다. 이를 통해 학술 문화 환경 변화에 부응하고 인문정보의 대중화를 선도하여 문화 산업 분야에서 실록의 활용을 극대화하기 위한 기반을 조성하고자 합니다.
[개설]
무학은 병법과 무예를 진작시키려는 학문이었고, 임진왜란 이후에는 지방 사회에 훈련원(訓鍊院)과 같은 무학이 설립되어 무학생(武學生)이라는 역명(役名)으로 사용되다가 무학이라는 하나의 직역 개념으로 사용되었다.
[담당 직무]
조선시대 태종은 하륜의 주청에 따라 관리를 등용하기 위한 열 가지 시험 과목을 두었다. 즉 유학(儒學), 자학(字學), 무학, 이학(吏學), 역학(譯學), 음양풍수학(陰陽風水學), 의학(醫學), 율학(律學), 산학(算學), 악학(樂學) 등이다. 이때 무학은 병법과 무예를 진작시키려는 학문 과목이었다.
이후 1596년(선조 29)에 교육기관으로서 무학 설립에 관한 전지가 있었다. 이에 외방에 무학이 설립되면서 무학은 무학생에 대한 역명으로 개념화되어 갔다. 이러한 양상은 호적상에서 호주의 직역으로 무학이 확인되는 데서 살필 수 있다.
[변천]
1406년(태종 6)에 좌정승 하륜이 십학(十學)을 설치하는데, 무학은 십학 가운데 두 번째로 기술되고 있다[『태종실록』 6년 11월 15일]. 또한 태종대에는 예조(禮曹)의 건의로 사맹월(四孟月: 봄·여름·가을·겨울의 각 첫 달인 음력의 정월·4월·7월·10월)에 각종 학과에서 시험을 보았는데 무학은 병조(兵曹)에서 주관하게 하였다[『태종실록』 16년 3월 29일]. 그러나 점차로 문·무과에서 문과 위주의 풍조를 띠게 되었고, 문반에 비해 무반의 입지는 보다 낮아졌다.
한편 조선후기에 들어서 무학은 직역의 개념으로 통용되었고, 직역자로서 무학의 법제적·사회적 지위는 양반 사족에서 점차 하향하는 추세를 보이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