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왕조실록사전을 편찬하고 인터넷으로 서비스하여 국내외 다양한 분야의 연구자와 일반 독자들이 왕조실록에 쉽게 접근할 수 있도록 하고자 합니다. 이를 통해 학술 문화 환경 변화에 부응하고 인문정보의 대중화를 선도하여 문화 산업 분야에서 실록의 활용을 극대화하기 위한 기반을 조성하고자 합니다.
[내용]
원래 통솔하는 민호(民戶)의 수에 따라 만호·천호·백호 등으로 불렸으나 점차 지휘관의 품계를 표시하는 것으로 변했다. 일본 원정에 실패한 뒤 왜구의 침입을 대비하기 위해 남해안 요충지에 진변만호부(鎭邊萬戶府)를 설치하면서 비로소 외방에도 설치하게 되었다. 한편 수도의 치안과 경비를 강화하기 위해 설치했던 순마소(巡馬所)가 1300년 순군만호부(巡軍萬戶府)로 확대·개편되면서 그 관원으로 도만호(都萬戶)·상만호(上萬戶)·만호·부만호 등을 두었다. 공민왕 때 반원개혁의 단행으로 성격에 약간의 변화가 생겼는데, 특히 1369년에는 동북면과 서북면의 방어 거점 지역에 다수 설치되었다.
조선시대에 들어와서도 크게 바뀌지는 않았다. 그러나 순군만호부가 순위부(巡衛府) 등을 거쳐 의금부로 개편되었던 것을 계기로 만호부 조직은 소멸되었으나, 만호라는 직위 명칭은 그대로 사용되었다. 주로 연변의 요충지 등에 배치되어 그 지역을 수비하는 군대나 병선(兵船) 따위를 관장하면서 외적의 침입에 대비하는 임무를 띠었다. 『경국대전』에서는 양계지역에 육군을 통솔하는 전임 지휘관으로서 병마만호를, 연해지역에는 수군을 담당하는 수군만호를 두었다. 조선의 초창기에는 3품 이상을 만호, 4품에서 6품까지를 천호라고 일컬었던 것을 1413년(태종 13)부터 3품직을 만호로, 4품직을 부만호로, 5품직을 천호로, 6품직을 부천호로 개칭하였다. 그 뒤에 몇 차례 변화를 겪으면서 종4품으로 고정되었다. 만호를 거친 자는 비록 수령을 지내지 않았더라도 경관직(京官職)으로 올라갈 수 있는 기회를 얻었다. 이 외에도 북방 민족들을 회유하기 위해 유력자들에게 명예직으로 제수하고 그에 따른 특혜 따위를 내려주기도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