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주조선왕조실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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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포(麻布)

서지사항
항목명마포(麻布)
용어구분전문주석
동의어대마포(大麻布), 포(布)
관련어구승포(九升布), 면포(綿布), 백저포(白紵布), 상포(常布), 세포(細布), 십승포(十升布), 오승포(五升布), 저마(苧麻), 저포(紵布), 정포(正布), 추포(麤布), 포목(布木)
분야생활 풍속
유형물품 도구
자료문의한국학중앙연구원 한국학정보화실


[정의]
대마(大麻) 껍질의 섬유로 짠 직물.

[개설]
마포는 흔히 삼베라고 하며 베, 대마포(大麻布)로도 불린다. 대마 껍질 안쪽에 있는 인피섬유(靭皮纖維)를 이용하여 짜는데, 수분을 빨리 흡수하고 배출할 뿐 아니라 곰팡이를 억제하는 항균성과 항독성이 있다. 견고성과 내구성이 뛰어나 서민의 옷감으로 주로 이용되었다.

[연원 및 변천]
마포는 뼈바늘과 가락바퀴, 베실 등의 유물이 발견되는 것으로 볼 때 청동기나 철기시대부터 사용된 것으로 추정된다. 통일신라시대에 작성된 『신라촌락문서(新羅村落文書)』를 통해 각 촌락에서 마포를 수취한 정황을 파악할 수 있다. 『고려사』에도 마포를 공물로 수취했다는 기록이 있으며 송과의 무역에서 수출품으로 쓰이거나 화폐로서 기능하기도 하였다. 조선시대에 들어와서는 전세 대납품으로 쓰이기도 하였다. 강원도 영동 9읍과 영서 4읍, 전라도 산군 2읍, 경상도 산군 4읍은 마포로 대납(代納)하고, 강원도 영동 9읍과 영서 7읍은 마포로 환납(換納)하도록 규정하였다. 대동법 시행 이후에는 공물가 납부도 강원도 영서 산군 및 영동 각 읍에서는 미(米) 5두에 마포 1필로 대납하였다. 이외에도 곡물로 납부가 어려운 지역에서 마포로 대납이 시행됐는데 그 환산가는 호서 미 6두, 호남 미 8두, 영남 미 7두로 지역별 차이가 있었다. 19세기 후반 『대전회통』 단계에서는 마포로 환납하던 것 중 일부가 전(錢)으로 대납할 수 있게 되면서 마포의 부세 비중은 줄어들게 되었다.

[형태]
마포의 품질은 승수(升數)로 평가하는데 한 폭에 날실 80올로 직조된 것을 1승이라고 한다. 국가에서 부세로 수취하던 마포 1필은 길이 35척, 너비 7촌의 5승포가 정포(正布)로 규정되었다.

[생활·민속 관련 사항]
마포는 일상적인 교환수단인 화폐로서의 기능과 곡물 납부가 어려운 지역에서 부세납부 수단으로 기능하기도 하였지만, 가장 중요한 용도는 옷감이었다. 고가의 저포나 면포를 구할 수 없는 백성은 비교적 저렴한 마포를 주된 옷감으로 사용하였다. 한편, 마포는 장례문화에서도 중요한 역할을 하였다. 정확한 시기를 알 수 없지만, 삼국시대 이래로 마포는 장례에서 상복과 수의를 만드는 옷감으로 사용되었다. 이러한 전통은 지금까지도 이어지고 있다.

[참고문헌]
■ 『고려사(高麗史)』
■ 『대전회통(大典會通)』
■ 『비변사등록(備邊司謄錄)』
■ 『승정원일기(承政院日記)』
■ 『신라촌락문서(新羅村落文書)』
■ 이재룡, 『조선전기 경제구조연구』, 숭실대학교출판부, 1999.
■ 박평식, 「조선초기의 화폐정책과 포화유통」, 『동방학지』158, 연세대학교 국학연구원, 2012.

■ [집필자] 송양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