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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의]
조선 초 궁궐 내의 정원을 관리하고 과채(果菜)·화초(花草)에 관한 일을 맡아보던 관서.
[개설]
동산색은 조선 건국 직후에 설치된 것으로 추정되며, 1394년(태조 3)에 상림원(上林園)으로 개칭되었다. 궁궐 내 정원을 관리하고, 궐내 정원에서 수확한 과일 등을 대전(大殿) 등에 올리는 역할을 담당하였다.
[설립 경위 및 목적]
동산색의 설치 시기는 명확하지는 않지만 1392년 조선 건국 직후에 설치된 것으로 추정된다. 동산색은 궁궐 내 정원의 관리를 비롯해 궁궐에서 사용하는 과일이나 화초 등의 관리를 위해 설치되었다.
[조직 및 역할]
조직에 대해서 현재로서는 알 수 없으나 조선 초의 기구인 관마색(官馬色)[『태종실록』 1년 2월 30일] 기록이나 가례색(嘉禮色)[『태종실록』 2년 1월 17일] 기록 등을 통해 별도의 겸임직인 제조(提調)를 두지 않았을까 추정할 뿐이다. 또한 동산색의 임무가 궁궐 내의 정원 관리인 것으로 보아 주로 제조의 지휘 아래 내시들이 임무를 담당했을 것으로 추정된다.
[변천]
동산색은 1394년 7월 11일에 상림원으로 개칭되었으며, 상림원은 이후 장원서(掌苑署)로 바뀌어 『경국대전』에 규정되었다. 한편 폐지 이후 내시들이 담당하던 직임의 하나가 되어 궁궐 후원에서 재배하는 과일을 따서 올리기도 하였다[『중종실록』 34년 5월 20일]. 조선후기에는 장원서 소속의 별제(別提)가 동산색의 임무를 맡아서 생율(生栗)의 관리나 청포도의 진상, 중양절(重陽節)에 국화의 진상 등을 담당하기도 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