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왕조실록사전을 편찬하고 인터넷으로 서비스하여 국내외 다양한 분야의 연구자와 일반 독자들이 왕조실록에 쉽게 접근할 수 있도록 하고자 합니다. 이를 통해 학술 문화 환경 변화에 부응하고 인문정보의 대중화를 선도하여 문화 산업 분야에서 실록의 활용을 극대화하기 위한 기반을 조성하고자 합니다.
[내용]
‘후(堠)’는 거리의 멀고 가까움을 표시하기 위해 길가에 흙을 쌓아 설치하던 장승을 가리킨다. 1414년(태종 14)에 호조의 청에 따라 30리를 1식(息)으로 정하고 대후(大堠)를 설치하게 하였다. 그러나 제대로 시행되지 않다가 1441년(세종 23) 8월에 평안도는 사신이 왕래하는 지역이라 하여 대후를 세웠는데, 흙과 돌을 쌓기도 하고 혹은 나무를 심어 표시하기도 하였다. 10리 단위로는 소후를 설치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