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왕조실록사전을 편찬하고 인터넷으로 서비스하여 국내외 다양한 분야의 연구자와 일반 독자들이 왕조실록에 쉽게 접근할 수 있도록 하고자 합니다. 이를 통해 학술 문화 환경 변화에 부응하고 인문정보의 대중화를 선도하여 문화 산업 분야에서 실록의 활용을 극대화하기 위한 기반을 조성하고자 합니다.
[개설]
예문춘추관에 편성된 정2품 전임관이고, 정원은 2명이다. 장관으로서 아문의 직장으로 규정된 논의(論議)·교명(敎命)·국사(國史) 등의 일을 관장하였다.
[담당 직무]
1392년(태조 1) 관제 개정 시 예문춘추관에 편성되어 국사를 수찬할 때에는 시중 이상이 겸한 감관사의 지휘를 받아 관아사를 총관하였고, 논의와 교명 등의 일은 학사 이하를 자휘하면서 총관하였다. 대학사(大學士)는 학식이 탁월하고 명망이 높았던 인물이 제소(除召)되었기에 도평의사사동판사(都評議使司同判事)를 겸하거나[『태조실록』 1년 12월 13일], 의정부 구성원이 되어 도평의사사나 의정부의 정사 논의에 참여하였다.
[변천]
대학사는 고려초에 문덕전(文德殿)과 연영전(延英殿)에 종2품직으로 대학사를 둔 것에서 비롯되었고, 이후 고려시대를 통하여 보문각(寶文閣), 수문전(修文殿), 집현전(集賢殿), 한림원(翰林院) 등에 설치되어 운영되다가 1362년(고려 공민왕 11)에 대제학으로 개칭되면서 예문관, 보문각, 우문관(右文館), 진현관(進賢館)에 종2품직으로 설치되었다.
조선의 대학사는 1392년 관제 반포 때 1389년(고려 공양왕 1) 이래의 예문춘추관을 계승하여 예문춘추관을 두고 그 관원으로 시중(侍中) 이상이 겸하는 감관사(監館事) 1명에 이어 정2품 전임직인 대학사 2명과 정2품관 이상 겸직인 지관사(知館事) 이하와 종2품 전임직인 학사 이하를 두면서 설치되었다. 그러다가 1401년 관제개편 때 예문춘추관이 예문관과 춘추관으로 분립되고 대학사 이하가 대제학 1직 이하로 개칭되고 예문관관이 되면서 소멸되었다. 이 예문관 대제학은 1457년(세조 3)에 정2품관의 겸직이 되었고, 이후 1894년(고종 31) 갑오개혁 때 예문관이 혁파될 때까지 계승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