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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의]
종묘제례 의식의 초헌례를 행할 때 연주하는 「보태평지곡(保太平之曲)」의 세 번째 곡.
[개설]
조선 세종대에 회례연에 쓰기 위해 만든 「보태평지악」과 「정대업지악」이 세조대에 종묘제례악으로 사용되면서 일부 개작되었는데, 「귀인」은 세조대에 새롭게 개작된 곡이다. 세조대에 채택된 종묘제례악은 그 후 임진왜란과 병자호란 기간에 중지되었다가 다시 연주되었으며, 음악적 변화를 겪은 후 현재까지 전승되고 있다.
[내용 및 특징]
「귀인」은 종묘제례 의식에서 초헌례를 행할 때 연주하는 「보태평지곡」의 세 번째 곡으로, 「기명(基命)」에 이어서 연주된다. 등가에서 연주하며, 일무는 제이변(第二變)으로, 문무(文舞) 중 「귀인」에 해당하는 춤을 춘다. 세종대에 회례악으로 사용할 목적으로 「보태평지악」을 창작했을 당시의 제2변은 4언 12구의 한시로 된 「의인(依仁)」이었다. 세조 연간에 종묘제례악으로 채택되면서 선율의 축소나 확대는 없었다. 다만 곡명이 「의인」에서 「귀인」으로 바뀌면서 악장이 바뀌었다.
원 악장인 「의인」과 변화된 곡인 「귀인」은 모두 태조 이성계의 증조부인 익조(翼祖) 이행리(李行里)를 추앙하는 내용이다. 『대악후보』의 귀인장에 의하면, 「귀인」은 제2변 1편으로, “익조가 적도로부터 덕원으로 돌아와 거하니, 따르는 무리가 마치 장시로 들어가는 사람들처럼 많았다[翼祖自赤島 還居德源 從之者 如歸市].”라고 적고 있다.
세종대의 「의인」과 세조대의 「귀인」의 악장은 모두 한 구가 4언이며, 모두 12구로 이루어진 한시였다. 악장의 형식과 악장의 내용은 변함이 없으나 시어(詩語)는 약간 다르다. 「귀인」이라는 곡명은 악장의 제10구인 ‘유인지귀(維仁之歸)’에서 ‘인(仁)’과 ‘귀(歸)’를 취한 것이다. 「귀인」과 「의인」의 악장은 다음과 같다.
「의인」
上帝有赫 求民之莫 維此奧區 乃遷明德 民斯景從 仁不可失
越以鬷邁 其從如市 其從如市 天所畀矣 啓我鴻業 于千萬祀
「귀인」
皇矣上帝 求民之莫 乃眷奧區 乃遷明德 仁不可失 于胥景從
其從如市 匪我之私 匪我之私 維仁之歸 維仁之歸 誕啓鴻基
「귀인」의 음악적 특징을 살펴보면, 세종대의 제2변인 「의인」과 세조대의 제2변인 「귀인」은 「보태평」의 다른 곡들과는 달리 축소의 과정을 거치지 않았기 때문에 음악적으로 음계만 다른 곡이다. 그리고 「보태평」의 다른 곡들에 비해 악장에 가사에 해당하는 시어가 배치되어 있다.
「의인」의 음계는 임종(林鐘)·남려(南呂)·황종(黃鐘)·태주(太簇)·고선(姑洗)의 5음음계를 가지며, 선법은 중심음이 임종인 임종궁 평조의 음악이다. 박은 악장의 한 구마다 한 번씩 들어가는데, 악보상으로는 한 행에 박이 2번 나오며, 전체 32정간 6행으로 악보에 기록하였다. 세종대 의인의 장구형은 32정간 2행에 ‘고고편쌍(拍) 고편고편쌍(拍) 고쌍고편쌍(拍) 고편편고쌍(拍)’이며 이러한 장구형을 세 번 반복하였다. 「의인」의 종지형은 ‘황종-태주-황종-남려-임종’의 하강종지형을 취하고 있다.
세조대에 종묘제례악으로 연주했던 '귀인'의 음계와 선법은 황종·태주·중려(仲呂)·임종·남려의 5음을 사용하며, 중심음이 황종인 황종궁 평조이다. 박의 위치와 고형에서 세조대의 것이 16정간 12행으로 바뀐 것만 제외하면 「의인」의 것과 동일하며, 「의인」에서처럼 매 구마다 박이 한 번씩 들어가고 악장 한 자의 리듬은 5정간과 3정간 규칙적으로 배자하였다. 「귀인」의 종지형은 ‘중려-임종-중려-태주-황종’이다. 이것은 「의인」의 종지 선율을 그대로 5율 위로 올린 것으로, 「의인」처럼 순차적인 하강종지를 한다. 현행으로 오면서 규칙적이었던 리듬은 불규칙해졌으며 악장의 매 구마다 규칙적으로 들어가던 박도 불규칙하게 나타난다. 다만 종지형은 동일하다.
[의의와 평가]
「귀인」은 비록 세조대에 만들어진 곡이나, 세종대에 만들어진 곡을 청황종으로 조(調)를 바꾸어 만든 곡이므로, 세종대의 음악이라고 할 수 있다. 따라서 「귀인」을 통해 세종대의 음악을 알 수 있다는 점에서 의의가 있다고 하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