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왕조실록사전을 편찬하고 인터넷으로 서비스하여 국내외 다양한 분야의 연구자와 일반 독자들이 왕조실록에 쉽게 접근할 수 있도록 하고자 합니다. 이를 통해 학술 문화 환경 변화에 부응하고 인문정보의 대중화를 선도하여 문화 산업 분야에서 실록의 활용을 극대화하기 위한 기반을 조성하고자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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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자(口子)의 성곽 시설을 보(堡)라고 하였는데, 구자가 대부분 성곽을 갖춘 뒤로는 흔히 구자 대신 보(堡)라고 불렀다. 양계 국경지역의 구자(口子)는 고려 말부터 설치되었으나, 세종대에 4군과 6진 개척을 추진하면서부터 국방 전진기지로서 더욱 중요시되었다. 이로부터 구자에 목책(木柵)을 세워 방어시설로 삼고, 구자가 소속된 경원(慶源), 영북진(寧北鎭) 등의 토관(土官)천호(千戶) 즉 익천호(翼千戶)로 하여금 익군(翼軍)을 거느리고 지키도록 함으로써 구자가 실질적인 국방 요새로 기능하기 시작하였다.